린따로 〈미궁이야기〉(迷宮物語)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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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이야기는 미궁을 주제로 만든 세편의 작품들을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해 비디오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 87년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의 초대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오프닝과 엔딩을 '린따로' (제도물어, 은하철도 999 극장판, X엑스, 총몽, 환마대전)감독이 담당했고 프로듀서까지 겸했던 작품이다.

린따로와 가와지리(〈요수도시〉, 〈사이버 시티〉, 〈오에도 808〉, 〈마계도시〉, 〈요수도시〉, 〈철완버디〉 등)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Mad House 소속이다. 오토모 가츠히로는 린따로 감독의 〈환마대전〉에서 캐릭터 디자인을 했던 이후에 이 작품에서 같이 참여하게 되었으며, 그 다음해인 1988년 오토모는 그의 대작 〈아키라〉를 발표하게 된다.

도입부에는 린따로감독의 '라비린스 라비린토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노스왕이 괴물을 가두어 놓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로 시작되고, 가와지리의 '달리는 사나이', 오토모 가츠히로의 '공사 중지 명령' 순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다시 린따로의 에필로그 순서로 끝나게 된다.

린따로 감독의 미궁은 이제 환상이 되어버린 어린시절 낯설은 기억을, 그리고 서커스가 시작되려는 천막으로 이끌리는 소녀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으며, 스포트라이트가 내려오고 불빛이 막쪽으로 이동하면 무대는 어느 미래의 경기장이 된다.
자, 이제 그 화려함속으로 들어가보자.

첫번째 이야기 '라비린스 라비린토스'

어린소녀 '사치'는 여느 때처럼 집안을 뛰어다니며 놀다가 문득, 거울 안에 미로의 입구가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고양이 '치체로네'와 함께 거울 속의 미로의 세계로 들어간다.
迷로 속에서 삐에로의 인도를 받으며 사치와 치체로네는 미로의 출구를 발견하지만 거기에는 또 다른 미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가까운 迷래의 레이스 장 이었으나……,

두 번째 이야기 '달리는 사나이'

'나는 잭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그곳에 갔었다. 그와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그 레이스는 마치 죽음의 서커스 같았다. 10년 동안이나 챔피언으로 군림한 사나이 '잭휴', 많은 사람들이 그의 비상한 머신 컨트롤 능력에 감탄했다. 완전, 완벽, 죽음도 두려워하지않는 사나이, 싹쓸이 잭, 불사조 등등…, 수많은 별명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경주는 반드시 그의 희생을 대가로 요구했다. 끊임없이 스트레스가 누적되어가는 동안 그는 점점 파괴하여 갔다. 육체도, 영혼도…….'

밥스톤 신문기자는 옛일을 회상한다.
그는 당시 명성을 날리던 레이서의 집을 취재차 방문한다. 그는 무서운 장면을 목격한다.
그 레이서는 차의 조종석에 앉아서 정신력을 집중, 방안의 물건들을 허공으로 들어 올리는 능력을 발휘한다. 10년 동안이나 레이서 챔피언을 독차지해온 남자 '잭휴', 밥스톤은 이 초능력의 응용을 곧 자동차경주에서 보게 된다.
가까운 미래의 어느 자동차 경주장, 불꽃을 튀며 맹렬히 질주하는 자동차들………, 출발과 함께 순식간에 잭휴는 맨 뒤로 밀리게 된다.

상황실 A: 노면 상태 불안정! 심장박동과 땀 배출 증가! 망막 반응에 손실이 있습니다.
상황실 B: 그가 한계를 넘었다! 이대로 두면 차는 흔들림으로 산산 조각 날거야. 기권 시켜!

레이서 경기 관리 요원들은 잭이 한계를 벗어났다고 판단하고 그를 탈락 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잭휴는 이를 무시한 채 가속을 시작하고 그와 동시에 앞서가는 차들에게 정신을 집중한다. 갑자기 맨 앞에서 달리던 차의 유리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곧 이어 앞서가던 차들이 모두 차례차례 폭발하기 시작한다. 조종석이 강한 압력에 찌그러지고, 조종사가 밖으로 튕겨 나오기도 하면서 차례로 부서지기 시작했다. 큰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하고 레이스 주최측과 관중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그 화염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잭, 사실 그는 앞서가는 모든 차들을 향해 초능력을 사용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한 바퀴, 잭 앞에서 달리던 차들은 모두 파괴됐고 앞서가는 차는 한대 뿐이었다. 마침내 결승점에 피니시 레이서가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순간, 앞서 가던차가 정확하게 두 동강이 나면서 대폭발을 했다. 그 화염을 뚫고 잭의 차가 결승점으로 질주한다.

잭의 차가 결승점으로 질주하고 관객석은 물을 끼얹는듯한 침묵이 흐르고 그 사이를 뚫고 잭만이 결승점에 골인한다. 골인지점의 전광판에는 커다란 글씨로 잭의 우승을 알린다.
'Zack Hugh Win The Champion'
결승점에 골인을 했지만 그는 머신 속도를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계속 달리는 그의 등 뒤로 이상한 빛이 다가온다. 그 빛은 무서운 기세로 다가오더니 마침내 잭의 차 바로 뒤에서 커다란 폭발 음과 함께 모습을 차로 바꾸었다. 잭 옆으로 이상한 빛에 쌓인 차들이 지나간다.

그 차의 레이서들은 마치 원망하는 듯한 눈초리로 잭을 바라보며 그를 앞질러갔다. 이윽고 그 빛들은 잭의 앞에서 합쳐져 하나의 거대한 차가 된다.
순간, 잭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가속을 내어 앞서가던 차들을 추월하려 한다. 하지만 그때, 가속의 압력에 견디지 못한 후드이 게기판이 하나 둘 폭발하고 차체가 하나씩 차례로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잭은 조금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이윽고 차 오일이 새고 화재가 발생했다. 그의 헬멧이 금이 가고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거의 앞서가던 차들을 따라잡을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세상사람이 아니었다.

곧 엄청난 소리와 함께 차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의 차는 불덩어리가 된 채 갈기갈기 찢겨서 레이스장 곳곳에 흩어져 갔다. 연이어 또 한차례의 폭발이 일어나고 그의 목걸이만 허무하게 레이스장에 뒹굴고 있었다. 승부욕에 눈이 먼 한 인간의 비참한 최후였다.

잭휴, 그는 위대한 챔피언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의 죽음은 미스터리로 남겨져 있다.
사건을 처음부터 지켜본 밥스톤은 조용히 그때의 일을 회고한다. 그 사건 이후로 폐쇄된 경기장에는 바람소리와 함께 자동차 달리는 소리가 지금까지도 들리고 있다.
그가 지금도 달리고 있는 것일까?……….,

세 번째 '공사 중지 명령'

한 대기업이 거대한 공사를 추진하고 있다. 열대 우림 지역에 위치한 어느 자그마한 공화국의 밀림을 도시로 바꾸는 대역사의 시작, 이름하여 'PROJECT 444.'

Aloana 공화국이 공사를 허가한 땅은 곶으로 둘러싸인 늪지대, 우기가 되면 거의 모든 지역이 강으로 변해버리고, 물이 빠지면 식물들이 마치 괴물 처럼 자라나는 악지형이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도시 하나를 세우기 위한 대공사인지라 모든 작업이 로봇들의 손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공화국에 쿠데타가 발발하면서 새로 수립된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여 결국 그 공사는 중지되기에 이르렀다. 곧 본사에서는 공사중지 명령을 내리지만, 공사는 계속되고 엄청난 자원을 낭비한다. 그리고 그 공사장의 유일한 인간이었던 공사감독이 실종된다. 그러자 본사에서는 새로 유능한 공사감독을 선임하여 그에게 사라진 공사감독을 찾고, 공사중지를 감독하라는 임무를 부여한다.

회사간부:
"프로젝트 444의 비용이 너무 막대했지. 그것은 아직도 우리 자원의 상당부분을 까먹고 있다네. 더 이상의 돈을 낭비하기 전에 즉시 프로젝트 444를 멈추어야만 했다네. 이미 우린 공사감독에게 그 프로젝트를 중지하라고 명령을 했어. 그런데 공사감독이 명령을 내린 지 얼마되지않아서 사라졌어. 위치상으로 볼 때 그 공사는 로봇이 일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 되었어. 그곳의 유일한 인간은 공사감독 뿐이었지.
공사중지 명령을 감독에게 하달했지만 그 순간에도 그 고철덩이 로봇들은 계속해서 자원들을 늪에다 집어넣고 있었지. 그 공사감독을 찾고 프로젝트 444가 중지되는지 감독하라고 그곳에 자네를 보내는 거야. 부탁하네!"

새로 임명된 공사감독은 공사장으로 향하는 호버그랩트에서 회사 간부의 지시를 상기하고 있었다. 잠시 후, 프로젝트 444 현장에 도착한 그의 눈에 비친 공사현장의 풍경은 그의 예상을 많이 벗어났고 분위기가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공사는 계속되고 있었고, 상당수의 작업 로봇들이 과열되어 있었다.

공사감독: 더 이상 두 눈 뜨고 네가 로봇들을 고철덩어리로 만드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자,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이 우둔한 로봇아! 공사중지 명령을 내려! 지금 당장 공사를 중지시켜!

공사로봇: 지금 하달하신 명령은 공사 방해로 간주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저에 대한 명령권은 무효입니다. 공사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은 모두 제거되어야 합니다. 오늘부터 당신의 공사감독권은 영구히 취소됩니다.

감독을 보좌하는 로봇은 공사를 중지하라는 감독의 명령에 이상한 반응을 보이며 그를 공사에 방해가 되는 요소라고 규정, 그의 공사감독에 관한 모든 권한과 명령권을 박탈해 버린 후 숙소에 감금한다. 감금된 숙소에서 할 수 없이 체념하고 방안을 둘러보던 그는 이상한 메모를 발견하다. 그것은 게시판에 갈겨쓴듯한 글씨였다.

'도와주세요! 이 미친 로봇이 저를 죽이려고 합니다.'

아내에게: 난 이제 끝이야, 여보 사랑해!….

공사는 계속되고 완공일에 맞추기 위해 보좌 로봇은 모든 로봇들에게 최대한 빨리 작업을 끝내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무리한 작업명령으로 인해 많은 값비싼 작업 로봇들이 하나 둘 과열되어 폭파되기 시작한다. 마침내 자신도 과열되어 비틀거리며 보좌 로봇이 아침식사를 가지고 온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감독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로봇이 가져온 식사는 음식이 아니라 아직도 작동하고 있는 기계의 한 부속품이었다. 공사감독은 지부에 숨어있다가 로봇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쇠파이프로 내려치지만 보좌 로봇은 몸이 부서져도 더듬더듬 말한다.

'제가 부서진다… 해도 공사는 중지되…지 …..않을…것입니다. 어떤 변화도 …없을 ….겁니다. 우린 공사…를…D-Day까지 완공….해…야…'

중얼거리는 로봇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한 후 창 밖의 공사장을 내려다보지만 공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헛일이야, 저 로봇들은 아직도 일하고 있군… 그래 결국 이 로봇은 터미널일 뿐이지. 메인 컴퓨터를 정지시키기 전까지는 공사를 멈추지 않겠지…. 이 케이블을 따라가면 그곳까지 데려다 주겠지…'
그가 방에서 나간 잠시 후 모니터가 점멸 되면서 본사에서 긴급무전이 온다.
'비상! 본부로부터의 긴급 지령이다. 오늘 새벽 이른 시각에 New Aloana 공화국에 또 다른 쿠데타가 일어나 새 정부가 구성되었다. 반복한다. 프로젝트 444는 유효해졌다. 내 말 듣고 있나? 공사감독!'
공사감독은 메인 컴퓨터와 연결된 전선 케이블을 타고 메인 컴퓨터로 향한다.

끝으로 각 내용을 대략 요약해 보면, 오프닝에 해당되는 '미로'는 미로를 탐구하는 소녀와 그녀의 고양이, 그리고 삐에로의 숨바꼭질을 환상적인 연출력으로 표현했고, 두번째의 '달리는 사나이'는 승부에 눈이 먼 한 이기적인 인간의 최후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공사중지 명령'은 공사명령을 취소하는 공사중지 명령에 반발하는 컴퓨터와 인간의 대결을 특이한 연출방법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이들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특이하고 불가사의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미궁물어는 유년기에 꿈꾸었던 환상에 대한 실체를 보여주기도 하고,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적나라한 경고, 컴퓨터 만능 사회에 던지는 경고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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