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사이버상가 저가 공세에 반발

중앙일보

입력

롯데백화점의 디펄스 T셔츠 매장에는 요즘 옷을 입어본 뒤 사지 않고 돌아가는 젊은 여성고객이 많아졌다. 지난 1일 이 백화점에 들른 박민지(26.서울 쌍문동)씨는 "백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사이즈와 색상까지 꼼꼼히 살핀 뒤 인터넷의 가격비교 사이트를 뒤져 물건을 사면 더 싸게 살 수 있다" 고 말했다.

박씨는 "지금은 셔츠나 속옷.양말.핸드백.화장품 등 간단한 상품 중심이지만, 앞으로 취급품목이 다양해지면 복잡한 백화점에 가지 않고 바겐세일 첫날 인터넷으로 한꺼번에 주문할 생각" 이라고 말했다.

디펄스 매장 관계자는 "아직까진 경기가 괜찮은 편이지만 앞으로 인터넷 판매가 상당한 영향을 줄 것 같다" 고 걱정했다.

인터넷 거래가 늘면서 기존 유통망과의 마찰이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백화점 매장과 대리점의 반발로 리바이스가 청바지의 인터넷 판매를 중단했고, 나이키는 일반 매장과의 차별화를 위해 인터넷에는 고객들이 스스로 디자인하는 고급제품 위주로 판매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인터넷 상거래의 초기단계인 국내에서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충돌' 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자동차·가전·항공사·골프공·증권·보험 등 대리점이나 딜러체제로 운영해온 업종일수록 마찰이 크다.

자동차 판매노조는 최근 "영업직원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 며 인터넷 판매를 중지하라고 인터넷 판매업체에 정식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인터넷 판매업체들은 "대세를 거스르는 시대착오적 발상" 이라며 반발,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자동차 회사들은 기존 판매망의 붕괴를 우려해 인터넷 판매업체에 자동차를 넘긴 대리점에 징계조치를 취했다.

인터넷에서 수입 골프공을 판매해온 이모(26.경기도 분당)씨는 최근 수입업자인 S사로부터 상품공급을 갑자기 중단당했다. 이씨는 일본 스미토모의 골프공을 수입해온 S사에서 지난해 8월부터 35% 정도 낮은 가격에 공을 공급받아 우편요금과 마진을 떼고 소비자가격보다 20% 가량 싸게 인터넷으로 팔아왔다.

S사는 "일반 골프숍에서 공을 구입하는 대다수의 고객을 고려해 내린 조치" 라며 "이씨가 지나치게 싸게 팔아 공급을 중단했다" 고 주장했다.

가전업계도 인터넷 판매업체와 기존 대리점 사이에 끼어 일단 인터넷 거래에 소극적인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국내 대리점 매출이 8조4천억원(예상)인 반면 인터넷 매출은 1백억원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은 대리점 공급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는 절대로 인터넷 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채 인터넷에는 젊은 층 위주의 디지털 제품만 주로 올려놓고 있다.

LG전자도 지난해 대리점 매출 3조5천억원 가운데 인터넷 판매는 월 2억원 수준이어서 당장 큰 문제는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삼성·LG전자는 앞으로 인터넷 거래 확대가 피할 수 없는 추세라는 판단 아래 전국 1천3백여개 대리점 가운데 3백여개씩을 골라 인터넷 판매 거점인 '사이버 대리점' 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증권사들도 사이버 주식거래 비중이 60%를 넘어서면서 창구영업만으로 생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여기에 e트레이드코리아 같은 사이버증권사가 위협적인 존재로 등장하고 있다.
성과급 체제인 증권사 직원들은 사이버 거래 수수료가 창구매매의 20%라서 사이버 약정을 많이 올릴수록 돌아오는 몫이 적어져 울상이다.

최근 LG 등 대형 증권사가 거래소 매매수수료를 0.05%포인트 낮추고 사이버 수수료를 평균 15%정도 올린 것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공존공생을 위한 자구책으로 풀이된다.

생활설계사 중심으로 꾸려온 생명보험업계는 다음달부터 전자인증제도가 도입돼 인터넷으로 싼 값에 보험가입이 가능해지면 '아줌마 부대' 로 불리는 24만명에 이르는 생활설계사의 위상이 크게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지난 2년동안 구조조정 과정에서 11만명의 생활설계사가 줄어들어 그나마 다행" 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이 2~3년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할인가격으로 비행기표를 팔기 시작하자 단골 고객인 여행사들이 손님을 빼앗기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올해 사이버 판매액은 1백20억원 정도로 크지 않을 것" 이라며 "여행사와 공동으로 인터넷 판매망을 구축해 여행사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비행기표를 살 수 있도록 하겠다" 고 말했다.

이철호.송상훈.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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