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지친 아내가 옛 애인을 만났을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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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주부에게 홀연히 나타난 옛 사랑만큼 활력을 주는 사건이 또 있을까. 게다가 그 사랑이 자신을 향한 마음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세속적으로도 보란듯이 성공한 상태라면. 일에만 마음쏠린 무덤덤한 남편을 자극하는 데 이보다 효과적인 무기는 없다.

SBS가 6일부터 방송하는 새 월화드라마 〈사랑의 전설〉(박예랑 극본·최문석 연출)은 결혼생활에 제법 이력이 붙은 주부들에게 잠재해 있을 법한 욕망을 극중 현실로 끄집어 낸다.

주인공 영희(황신혜)는 능력있는 펀드매니저 남편 정환(김상중)과 다섯살 난 딸을 둔 30대 초반의 주부. 승부욕 강한 정환은 일에만 몰두, 결혼 전과 달리 이제는 영희를 집과 같은 하나의 소유물로 여긴다.

그런 영희 앞에 앞에 결혼 전에 사귀었던 남자 민석(최민수)이 스쳐 지나간다. 사랑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헤어졌던 민석은 물어물어 확인해 보니 이제는 성공한 변호사 신분이다. 게다가 우연인듯 아닌듯 영희네 이웃으로 이사온 민석은 아직 독신인 상태. 민석이 영희를 여전히 잊지 못하는 마음을 전해오면서 영희에게는 일대 갈등과 혼란이 벌어진다. 여기에 민석을 짝사랑하는 동료 변호사 지혜(이승연)가 가세, 갈등은 한층 복잡해진다. 드라마 초반, 남편의 대학 후배이기도 한 지혜는 남자들과 곧잘 어울리는 당당한 모습으로 영희를 주눅들게 한다.

기혼여성이 다시 사랑에 빠지는 줄거리란 점에서 〈사랑의 전설〉은 언뜻 대히트한 MBC드라마 〈애인〉을 연상시키지만 그와 달리 결혼의 현실적인 문제, 전업주부들의 고민을 담아내는 데 좀 더 힘을 실으려는 인상이다. 대본집필을 맡은 박예랑 작가는 지난해 MBC드라마 〈마지막 전쟁〉에서 30대 맞벌이 부부의 갈등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 예상외의 인기를 얻었던 인물. 연출자 최문석 PD 역시 "〈사랑의 전설〉은 트렌디 드라마는 결코 아니다" 라면서 "땅바닥에 발을 단단히 박은 이야기로 풀어나가겠다"고 드라마의 사실적 지향을 강조한다.

과거 〈애인〉에서도 주인공을 맡았던 황신혜의 달라진 모습은 드라마의 이런 분위기를 단적으로 전달한다. 청소하랴, 유치원에서 아이 데려오랴, 남편 심부름하랴, 부스스한 차림새로 남편의 눈치를 보면서 가끔 푼수같은 모습을 내보이곤 하는 영희를 그는 한결 자연스레 소화해 낸다. 결혼·출산 등 그동안의 개인적인 경험이 편안한 연기에 큰 도움이 됐다는 게 그 자신의 말이다.

첫 회 시사장에서 만난 그는 "혼자였을 때는 방황이나 불안도 겪었지만 강렬한 감정을 연기하는 것이 한결 쉬웠다" 면서 "요즘은 첫사랑을 다시 만난 영희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예전의 기억을 끄집어내느라 한참 애을 썼을 정도"라고 덧붙인다.

이런 영희에게 남편 정환을 버리고 민석과의 사랑을 향해 내달리게 되는 데는 상당한 결단이 필요할 것 같다. 제작진은 '또 한 편의 불륜드라마'라는 지적에 대해 "이혼을 하느냐 마느냐 보다 인물들이 겪는 심리적인 고민을 주목해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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