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 잡는 ‘살균 가전’ 주부들 마음도 사로 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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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아유, 퀴퀴한 냄새가 비행기 안에서 진동을 하네.”

 2008년 봄 제주~서울행 비행기 안. 어디선가 나는 퀴퀴한 ‘화장실 냄새’에 승객들이 코를 막으며 한 말이다. 참다 못한 몇몇의 승객들은 스튜어디스에게 “냄새가 어디서 나는지 밝혀내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이때 비행기 앞쪽 좌석에 얼굴이 빨개진 채 안절부절하고 있는 남자 10여 명이 앉아 있었다.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내 공조개발팀의 제균 태스크포스(TF)팀이었다. 제주의 돼지 축사에서 개발 중인 제균기기 성능을 실험하다 오는 길이었던 이들의 온몸에 축사 냄새가 잔뜩 배어 있어 벌어진 소동이었다.

 그해 여름 경기도 분당 일원동의 삼성의료원의 한 입원실. 아토피 등과 같은 피부질환으로 입원 중인 환자들 앞에 한 무리의 남자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벽마다 네모난 기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제균 성능을 갖춘 ‘S-플라즈마 이온’을 배출하는 시험장치였다. 상온의 공기에 12V의 전압을 주면 만들어지는 이 이온은 공기 중의 바이러스·박테리아 등 유해물질과 활성산소를 없앴다. 원리가 간단하다 보니 이 전기반응을 일으키는 핵심 부품의 크기는 성냥갑만 했다. 삼성의 제균 TF팀이 3년여의 실험에 걸쳐 완성한 것. 이 이온 장치는 에어컨·공기청정기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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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이나 집의 방 안에서 쓰기 좋은 개인용 제균기 ‘바이러스 닥터’를 출시하기도 했다. 올해 출시한 지펠 냉장고에도 ‘S-플라즈마 이온’ 장치를 넣어 식중독·패혈증 등의 원인이 되는 각종 세균을 없애고 냉장고 냄새를 제거하게 했다.

 ‘건강한 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날로 높아지면서 가전업체들이 ‘세균 잡는 기능’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의 ‘S-플라즈마 이온’처럼 물에 전기화학 반응을 가해 세균 잡는 물질을 만드는 게 인기다.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물로 돌아와 친환경적이기 때문이다.

 한경희생활과학은 살균수를 만드는 가전 ‘클리즈’를 선보였다. 굳이 삶거나 화학세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이 물에만 담가놓으면 살균이 된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주방·유아용품에 묻어 있는 세균, 과일·야채 표면의 농약을 없애는 데 편리하다. 원리는 삼성전자가 개발한 ‘S-플라즈마 이온’과 비슷하다. 물에 전기화학 반응을 줘 물 분자에서 수소 원자를 하나를 떨어뜨린다. 이때 만들어지는 수산화기(OH-)가 세균과 결탁해 살균 기능을 갖는다. 회사 관계자는 “화학반응이 있은 후 1시간이 지나면 이 살균수는 자연상태의 물로 돌아온다”고 설명했다. 웅진코웨이는 이 살균수 만드는 기능을 정수기에 접목시켰다. ‘스스로 살균얼음정수기’는 살균수를 만들어 내부 탱크 등 물이 지나는 곳을 자동으로 살균하게 했다. 제품 전체를 살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각종 청소용품들은 자외선이나 고온을 활용해 살균 기능을 더하는 추세다. 한경희생활건강의 침구 청소기 ‘침구킬러’는 제품 바닥에 섭씨 120도까지 가열되는 ‘살충열판’을 넣었다. 이를 통해 집먼지나 진드기 등 침구에서 서식하는 각종 세균을 없앤다. 온도가 120도까지 올라가면 자동으로 히터가 꺼져 이불이 타지 않게 막는다. LG전자의 세탁기 ‘트롬6모션’은 세탁을 할 때 섭씨 60도의 스팀이 나와 세균을 없애게 했다. 또 디오스 식기세척기에는 자외선(UV) 램프가 들어가 있다. 고온(섭씨 80도)으로 1차 세척을 한 뒤 자외선 램프로 2차 살균을 해 세균을 99.9%까지 없앨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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