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체제 붕괴 대비를” 소로스의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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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소로스

헤지펀드 귀재인 조지 소로스(81) 소로스펀드 회장은 유로(euro) 탄생 과정에서 딴죽을 걸었던 인물이다. 그는 1992년 실물경제의 체력보다 고평가된 영국 파운드화를 공매도했다. 덫을 쳐놓고 기다린 셈이다. 그의 바람대로 영국은 실물경제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파운드화 가치를 떨어뜨렸다. 소로스는 수익 10억 달러(1조900억원)를 전리품으로 챙겼고 그 여파로 유로 시스템의 전 단계인 유럽환율메커니즘(ERM)이 마구 흔들렸다. 일부 전문가는 그때 유로 출범이 어렵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이런 소로스가 26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유로체제 붕괴’를 경고했다. “유럽이 현재 겪고 있는 위기는 유로체제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유럽 위기는 재정위기라기보다는 금융위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로스는 유로체제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했다. “현재 유로 시스템엔 회원국이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가 마련돼 있지 않다”며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회원국이) 유로체제 이탈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날 빈 연설에서 그는 탈출이 불가피한 나라가 그리스라고 드러내 놓고 말하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발 경제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금융 시스템도 아주 취약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로체제 이탈이 불가피한 나라가 그리스임을 넌지시 내비친 셈이다.

 소로스는 유럽 리더들의 발상 전환을 촉구했다. “유럽 리더들이 ‘플랜B(비상대책)’를 마련해야 할 때다. 하지만 그들은 유로체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가 말한 플랜B는 유로체제 이탈을 허용하거나 대비하는 대책이다. 이어 그는 “유럽 리더들은 구제금융과 긴축 처방으로 현상을 유지하며 시간을 벌려고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소로스의 제안대로라면 그리스를 위한 적절한 처방은 2차 구제금융과 긴축·민영화가 아니다. 그리스가 유로화를 포기한 뒤 자체 통화를 부활시키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늘려 경기를 되살리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유럽 리더들은 2차 구제금융 대가로 그리스에 추가 긴축을 요구하고 있다. 또 한 차례 시간벌기에 나선 셈이다. 그리스 의회는 29일과 30일 각각 긴축과 민영화 법안을 처리한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가 의회에 제출한 긴축안에 따르면 정부지출 삭감 규모가 1100억 달러나 된다. 1차 때보다 더 큰 규모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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