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또 설득 … 쿠오모‘무지개 깃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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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모 주지사 고마워요. 약속을 지켜줘서.”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5번 애비뉴엔 30만여 인파가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흔들며 운집했다. 올해로 41번째를 맞은 동성애자 축제 ‘프라이드(Pride) 퍼레이드’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올해 퍼레이드의 주인공은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54·사진)였다. 그는 25일 뉴욕주 상원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킨 주역이다. 퍼레이드 맨 앞에 선 그는 “뉴욕은 미국의 등대”라며 “뉴욕이 하면 다른 주에서도 못할 게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뉴욕 주지사 선거에서 그가 동성 결혼 합법화 공약을 내걸었을 때만 해도 지지자조차 반신반의했다. 뉴욕주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이지만 동성결혼 합법화는 넘기 힘든 벽이었다. 2009년 민주당이 주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을 때도 의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엔 공화당이 주 상원을 장악했다. 전체 62석 가운데 공화당은 32석, 민주당은 26석, 무소속 4석으로 공화당이 압도적이었다. 주민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쿠오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참모진과 2009년의 실패 원인을 분석했다. 동성결혼 옹호단체의 과격한 시위가 오히려 역풍을 불러왔다는 지적에 따라 그는 사분오열된 옹호단체를 하나로 통합하도록 했다. 반대 정치인에 대한 비방이나 혐오스러운 시위도 자제시켰다. 대신 그는 반대 의원 설득에 나섰다.

 민주당 내 대표적 반대론자였던 칼 크루거 상원의원이 첫 표적이었다. 크루거는 2009년 표결 때 반대표를 던졌다가 게이 조카를 둔 동거녀의 반발에 고민 중이었다. 쿠오모는 크루거와 친한 의원을 보내 “역시 기댈 곳은 가족뿐”이라며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지역구민의 반발을 우려한 공화당 조셉 아다보 의원에겐 지역구민 명의로 된 6000여 장의 엽서 공세로 그를 안심시켰다.

 공화당원 설득엔 월가의 스타 헤지펀드 매니저 폴 싱어가 거들었다. 싱어는 공화당 지지자였지만 게이 아들 때문에 쿠오모와 의기투합했다. 싱어의 설득과 후원 약속에 4명의 공화당원이 찬성으로 돌아섰다. 쿠오모는 수시로 공화당원을 집무실로 초대해 동성커플의 안타까운 사연을 직접 듣게 했다. 가장 큰 벽은 가톨릭의 반대였다. 가톨릭 신자였던 쿠오모는 티머시 돌란 뉴욕지역 대주교를 직접 만나 호소했다. 돌란 대주교는 뉴욕주 상원의 표결을 며칠 앞두고 시애틀로 출장가는 것으로 화답했다.

 쿠오모는 취임 후 친정인 민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득세 인상 상한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주정부가 세수를 늘리기 위해 소득세를 마구 올리지 못하게 한도를 둔 것이다. 민주당 텃밭인 노조가 결사 반대했지만 그는 공화당 지지를 등에 업고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같은 그의 행보에 민주·공화 양당에서 칭찬이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 고문 제이슨 핼스턴은 “쿠오모가 불가능에 가까웠던 동성결혼 합법화를 성공시켰다는 사실보다는 끈질긴 설득과 협상을 통해 이를 이루어낸 과정이 더 빛났다”며 “그가 2016년 대통령 후보로 나선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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