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올가을 음악극 '춘향전' 공동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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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하얀 분장을 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옷을 입은 일본 가부키(歌舞伎) 배우(남성) 가 우리의 '영원한 연인' 인 춘향이로 출연하면 느낌이 어떨까. 또 중국 전통 연희인 월극(越劇) 배우(여성) 가 감미로운 현악기와 타악기의 반주에 맞춰 춘향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이몽룡을 연기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분명 우리가 수없이 보고 들었던 '춘향전' 과는 전혀 다른 색깔이 빚어질 것이다.

한.중.일 3국이 각기 고유의 연극양식과 음악을 통해 우리의 고전 '춘향전' 을 공동제작하는 독특한 무대가 마련된다.

동북아 연극교류를 위해 1994년에 시작한 베세토(베이징.서울.도쿄의 머리글자를 합성한 단어) 위원회가 10월 19일부터 나흘 동안 서울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리는 음악극 '춘향전' 이 그것. 지금까지 각기 다른 연극을 선보였던 3국이 함께 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처음이다.

이번 무대는 한.중.일 3국의 전통 연희가 어울리며 서양 연극과 다른 동양 연극의 정수를 비교·검토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것도 3국의 대표 극단과 최고의 연출자가 참여해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작품은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된다. 우선 중국측이 스타트를 끊는다. 춘향과 몽룡이 만나 사랑을 나누는 부분을 월극으로 재현한다.

월극은 중국의 전통극인 경극(京劇) 과 달리 20세기 초반 저장성(浙江省) 일대 항저우(杭州) .상하이(上海) 등에서 발원한 연극으로 우리 여성국극처럼 연기자 전원이 여성이라는 점이 특징. 84년 창단된 절강소백화월극단(浙江小百花越劇團) 이 방한한다.

특히 이도령역을 맡게될 마오웨이타오(茅威濤) 는 이 극단의 단장이자 중국연극협회 부주석으로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력을 갖춰 중국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다.

춘향이 몽룡과 이별하고 감옥에 갇히는 장면은 일본의 가부키로 처리된다. 가부키는 17세기 중반부터 일본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전극. 월극과 달리 주로 남성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무대는 3백20여명의 가부키 배우가 활동하고 있는 일본 최대의 쇼치쿠(松竹) 회사가 제작한다.

춘향역을 맡은 나카무라 시바자쿠(中村芝雀) 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배우로 명성이 높은 중견 연기자로 특히 일본 전통 춤의 달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출자 이시자와 슈지(石澤秀二) 는 "가부키 배우가 '춘향전' 에 출연하는 것은 처음" 이라며 "한국측과 상의해 한국 배우도 함께 무대에 세우겠다" 고 말했다.

마지막 3부는 국립창극단(단장 최종민) 이 창극(唱劇) 으로 꾸민다. 이몽룡이 어사출두 하면서 춘향을 재회하는 내용이다. 중국·일본과 달리 남녀가 혼성으로 출연한다. 춘향과 몽룡역은 국립창극단을 대표하는 안숙선과 왕기철이 열연할 예정. 한국측 연출은 극단 미추의 손진책 대표가 맡는다.

중국·일본측과 작품의 전체 방향을 조율하는 총연출도 맡은 손 대표는 "종전의 창극이 주로 서양의 연극구조에 우리 소리를 얹힌 형식이었다면 이번엔 판소리의 특징·장점이 최대한 살아나도록 무대를 꾸려가겠다" 고 강조했다.

또 가능하면 프롤로그·에필로그 부분에선 3국의 배우가 함께 서도록 해 국가간 우의도 다지겠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이번 공연은 동북아 전통 연극문화가 한자리에 모이는 큰 잔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행사를 총괄할 한국베세토위원회 김의경 위원장(서울시립극단장) 은 "동양 한자문화권의 소리·춤·음악이 어울리는 것 하나만으로도 관객들에게 보기 드문 충격을 줄 것" 이라며 자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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