領袖<영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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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호 31면

‘거느리다’라는 뜻을 가진 ‘領(령)’의 원래 의미는 ‘목(neck)’이었다. 이를 파자(破字)하면, 남에게 무엇을 시킨다는 뜻의 ‘令(령)’과 머리를 지칭하는 ‘頁(혈)’로 나뉜다. 머리가 신체를 움직이게 하는 통로, 즉 목이 되는 것이다. 옷이 목에 닿는 부분, 즉 옷깃을 의미하는 ‘의령(衣領)’이라는 말에 그 뜻이 온전히 살아 있다. 중국인은 넥타이를 ‘領帶(링다이)’라고 한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지도자를 뜻하는 ‘영수(領袖)’라는 말 역시 ‘목’과 관계 있다. 고대 중국인들은 옷을 만들 때 신체 접촉이 많은 옷깃(領)과 소매(袖) 부분을 특수 옷감으로 만들었다. 쉽게 닳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고관대작의 경우에는 금(金)을 덧대기도 했다. 옷깃과 소매가 화려하다는 것은 곧 신분이 높음을 상징했다. ‘영수’가 명망 있는 지도자라는 뜻으로 발전한 연유다.

‘領袖’가 지도자라는 의미로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당(唐)나라 때 편찬된 진(晉)나라의 역사서 진서(晉書)에서다. 진문제(晉文帝·211~265) 시기의 충신이었던 위서(魏舒)는 오로지 나라를 위해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진문제는 매번 조정 회의 때마다 대신들에게 “위서는 당당했고, 사람의 영수였다(魏舒堂堂 人之領袖也)”고 말한 것으로 진서위서전(魏舒傳)은 전한다.

‘영수’라는 말이 꼭 좋은 의미로 쓰인 것만은 아니다. 원(元)나라 시대 희곡 작가였던 관한경(關漢卿·1220~1300)은 잡극(雜劇) ‘단도회(單刀會)’에서 삼국지의 등장인물인 마초(馬超)를 이렇게 평가한다. ‘마초라는 자가 있었으니, 그는 살인(殺人)의 영수(領袖)였다.’ 살인을 일삼는 지도자였다는 얘기다.

최고 지도자를 지칭하는 또 다른 단어는 ‘수뇌(首腦)’다. 말 그대로 으뜸(首)가는 두뇌(腦)다. 지도자라면 당연히 해당 집단에서 가장 현명한 인물이어야 할 터다. 가장 높이 있는 사람을 뜻하는 정상(頂上)이란 단어도 지도자를 뜻한다. 정상회담, 수뇌회담, 영수회담이 모두 같은 말이다.

27일 여야 영수회담이 열린다. 나라를 이끌고 있는 두 지도자의 만남이다. 지도자가 실종됐다는 오늘날, ‘옷깃과 소매’가 만나 얽힌 현안을 말끔히 풀어 국민의 쌓인 불만과 어려움을 시원하게 풀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 나라에서 으뜸가는 두뇌를 가졌다는 두 인물의 만남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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