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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고도 신속하게’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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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

버지니아주 애난데일은 워싱턴 인근 최대의 한인타운이다. 이곳에 경찰이 길을 막고 일제 음주단속을 벌이는 경우가 잦아졌다. 한인들의 음주운전 행태가 도를 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에서야 늘 봐온 일이지만 미국에선 이례적인 모습이다. 사회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이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미국과 큰 차이가 있는 나라 중 하나다.

 미국은 일벌백계(一罰百戒)의 나라다. 선의(善意)로 가정한 개인의 자유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 은근슬쩍 탈세를 해도 적발될 확률이 낮다. 그러나 한 번 걸리면 두 번 다시 탈세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응징이 가혹하다. 세금 낼 시기가 되면 세무사들이 바빠지는 이유다.

 반면 한국은 발본색원(拔本塞源)의 나라다. 부정행위가 드러나면 촘촘한 그물로 송두리째 걷어내야 한다. 그만큼 혼탁의 정도가 심하다. 사소한 부정이 만연돼 있다. 더구나 “다 거기서 거긴데 왜 나만 때려 잡느냐”는 항변을 견뎌내려면 다른 방도가 없다. 온전한 사회를 향한 두 나라의 시스템은 이렇게 다르다.

 정권이 하산길에 접어든 지금, 한국 사회에 부정부패 척결이 또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익숙하면 ‘뉴스’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암행감찰반 활동과 골프장·술집 출입금지 등이 여전히 뉴스다. 한국이 미국에 비해 더 많은 사회 비용을 부패 척결에 투입하는 데도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모든 게 요란한 ‘단발성 캠페인’에 그치기 때문이다. 발본색원의 의미는 철저함이다. 부패의 재발을 막으려면 제대로 썩은 살을 도려내야 한다. 새 살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수다. 새 문화가 정착될 때까지 상황이 그대로 유지되는 시간들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효율성만 따져도 ‘일벌백계 사회’가 앞선 사회다. 우리 사회가 이를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는 ‘정상 참작’이 지나치기 때문이다. 바르지 못한 행위가 드러나면 당사자는 “어떻게 해서 얻은 자리인데”를 먼저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이에 공감한다. 이런 분위기에선 처벌이 무거움을 가지기 어렵다.

 앤서니 위너 미 연방 하원의원은 지난 16일 14년째 이어온 의원직을 내놔야 했다. 트위터에서 만난 여대생 등에게 자신의 볼썽사나운 사진을 보낸 게 이유였다. 동료 의원들이 그의 사퇴를 요구했다. 특히 그와 같은 민주당 의원들이 앞장섰다. 자리를 고집하는 위너의 모습은 보기 흉했지만, 사퇴의 변은 들을 만했다. “지역구 발전을 위해 내가 할 일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모든 상황을 뒤틀리게 만든 건 바로 나다.” 자기 책임에 대한 분명한 인정이다.

 문제가 터진 다음 당국자들은 흔히 “철저하고도 신속하게 해결하겠다”고 말한다. 여론에 부응하려는 취지겠지만, 이는 어법에도 잘 맞지 않는 눈속임일 뿐이다. 정반대의 두 가치를 동시에 성취할 수 있는 묘책을 갖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아직 우리 사회엔 차분하되 단호한 지속의 시간이 더 소중하다.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