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3차 달러 풀기 … ‘잭슨홀 콘퍼런스’ 열리는 8월이 고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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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카고거래소 트레이더들이 22일(현지시간) 각종 금융 자산을 매매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기자회견 발언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버냉키는 이날 정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했다. [시카고 로이터=뉴시스]


올 4월 첫 기자회견 때 벤 버냉키(Ben Bernanke)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잃어버린 10년’을 초래한 일본 통화 당국을 통렬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22일(현지시간) 두 번째 기자회견에서 “미국도 잃어버린 10년을 겪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이제는 10년 전보다 중앙은행의 고충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만 “두 차례 양적완화 정책이 없었다면 디플레이션에 빠졌을 수 있다”며 자신의 금융완화 정책을 옹호했다. 최근 불거진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해서도 그는 “일시적인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와 달리 그는 그리스 사태의 위험성에 대해선 경보를 울렸다. “미국 은행이 그리스에 직접 물린 돈은 많지 않지만 독일·프랑스 은행에 투자한 돈이 많아 간접적인 위험엔 상당히 노출돼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리스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더라도 “당장 피해는 적지만 이로 인한 파급효과는 미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그는 경고했다.

 하버드대를 거쳐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버냉키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공황 전문가다. 1929년 발생한 대공황이 30년대 중반 ‘더블딥(일시 회복 후 더 깊은 침체)’으로 악화한 원인을 규명한 논문으로 권위를 인정받았다. 경기 회복이 본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섣불리 펼친 통화 당국의 긴축정책이 경제를 벼랑 끝에서 밀어 버렸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버냉키는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자신의 소신을 거침없이 실천에 옮겼다.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춘 데 이어 1차로 1조7000억 달러, 2차로 6000억 달러를 푸는 양적완화 정책을 밀어붙였다. 이 때문에 그는 ‘헬리콥터 벤(헬리콥터에서 무차별적으로 돈을 뿌렸다는 뜻)’이라는 조롱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6월 말 2차 양적완화 정책 종료를 코앞에 두고 경제는 그의 예상과 달리 흐르고 있다. 2조30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퍼부었음에도 경기는 연초 반짝 회복세를 보이다 다시 꺾였다. 이와 달리 물가 불안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날 발언엔 답답한 그의 심정이 그대로 녹아 있었던 셈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끝까지 3차 양적완화 정책에 대한 언질을 주지 않았다. FOMC의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 때까지 잠잠했던 증시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경기 둔화는 일시적”이라고 자신만만했던 그가 한 걸음 물러섰으면서도 추가 대책에 대한 기대는 모른 척했기 때문이다.

  이날 두 번째 그의 기자회견장엔 처음과 달리 빈자리가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부드러웠던 첫 기자회견 분위기와 달리 날카로운 질문도 쏟아졌다. 이에 버냉키는 즉답을 피해 가거나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전략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벌써 “버냉키의 기자회견을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건 이 때문이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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