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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동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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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오영환
외교안보 데스크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동맹이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의 G8 국가를 비롯해 28개국이 회원이다. ‘전체는 하나를,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원칙이 연결고리다. 어느 한 나라에 대한 공격은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된다(조약 5조). 나토는 가장 성공적인 동맹이기도 하다. 냉전에서 승리했다. 옛 소련을 붕괴시키고 동유럽을 해방시켰다. 독일의 재무장을 막고 유럽 부흥을 이끌었다. 이즈메이 초대 사무총장이 내건 목표 ‘러시아 배제, 미국 편입, 독일 억지(Russians out, Americans in, Germans down)’가 이뤄졌다.

 나토도 세월은 이기지 못하는가.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10일 유럽 회원국에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당신들은 벌거벗은 임금님’이 아니냐고. 30일 퇴임하는 그의 나토 고별 연설은 신랄했다. ①나토의 아프가니스탄 임무는 군사능력, 정치적 의지에서 중대한 결함을 드러냈다. 200만 명(미국 제외)의 병력을 갖고서도 2만5000~4만 명 주둔 유지에 아등바등했다. ②대(對)리비아 작전은 더 심각하다. 모든 회원국이 작전에 찬성했지만 타격 임무에는 3분의 1도 참가하지 않았다. 군사적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동맹이 형편없게 무장한 정권을 상대로 11주째 작전을 벌이고 있다. ③나토는 이중 동맹(two-tiered alliance)이 되고 있다. 인도적 활동·개발·평화유지를 전문으로 하는 나라와 전투를 하는 나라로 갈려 있다. 수용할 수 없다. ④유럽 국가의 방위비는 9·11 테러(2001년) 이후 15%가 줄었다. 냉전 시기 미국은 나토 군사비의 50%를 분담했다. 지금은 75%를 넘는다. ⑤미국의 심각한 재정 상황은 국방 예산을 압박한다. 냉전 경험이 없는 미국의 미래 지도자들은 나토에 대한 자금 투입을 고려하지 않을 수 있다.

 게이츠 연설의 겨냥점은 유럽의 안보 무임승차다. 재정적자(14조3000억 달러)에 허덕이는 미국이 납세자의 돈으로 유럽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정책을 더 이상 떠받칠 수 없다는 경고다. 연설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재정적자 시대의 동맹 구조 재편을 예고한다. 동맹의 경제화다. ‘동맹 주식회사’에선 방위 분담이 결속력의 핵심 요소다. 공동의 적을 잃은 나토는 미국의 유지(有志)연합(coalition of willing)을 위한 틀로 전락할지 모른다.

 미국의 쌍무적(雙務的) 동맹에 대한 요구는 가속화할 것 같다. 미국은 향후 12년간 국방비를 4000억 달러나 줄일 계획이다. 재정적자 감축과 일자리 창출은 내년 대선의 최대 쟁점이다.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에는 재정 근본주의자 일색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군 지휘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프간에서 내년까지 3만3000명의 병력을 빼고, 일본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의 괌 이전과 후텐마 공군기지 이전 시기를 늦춘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 아닐까. 신고립주의를 점치는 얘기조차 나온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 상원 군사위원회는 지난주 ‘주한미군의 가족 동반 3년 근무’를 보류하는 권고안을 통과시켰다. 육군장관이 비용을 포함한 마스터플랜을 낼 때까지 자금 투입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이 근무 계획은 한강 이북 주한 미 지상군의 평택 이전과 맞물려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된 동맹 재조정 일환이다.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은 신속기동군 전략 때문이었다. 그곳엔 항구가 있다. 오산 비행장이 바로 옆이다. 중국이 코앞이다.

주한미군의 새 전략과 맞물린 계획이 예산 문제로 동결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미 육군장관은 그 비용을 어디에서 마련할 것인가. 다시 한·미동맹 재조정과 관리 문제가 제기되는 시점이다. ‘한·미동맹은 더 이상 좋을 수 없다’는 말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오영환 외교안보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