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정수의 해피 톡톡] 어느 초보 자원봉사자의 반성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김정수
행복동행 에디터
경원대 세살마을연구원
연구교수


‘가족봉사단활동/일시: 6.11(토) 10시~12시/장소: 이촌한강공원 안내센터 앞/내용: 한강환경정화활동…’.

허걱. 9일 오전에 도착한 문자메시지를 본 순간, 당황했습니다. 11일은 친정 식구들과 1박 2일 가족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이번 달에도 첫 번째 ‘놀토’는 봉사단 활동을 하는 날이란 걸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직접 숙소 예약을 하면서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짜증섞인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이틀 전에야 공지를 하면 어쩌란 거야. 게다가 겨우 쓰레기 줍기를 한다고!”

잘 압니다, 제 잘못이란 거. 우리 용산구 가족봉사단 활동일은 매달 첫 번째 놀토로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요. 시간과 장소만 매번 조금씩 바뀔 뿐입니다. 더군다나 제가 뒤늦게 확인했을 뿐, 봉사단의 인터넷 카페엔 지난달 27일 공지사항으로 올려져 있는 내용이더군요. 아직 습관이 안 밴 초보 봉사자가 생떼를 부려본 거지요. 하긴, 미리 알았다 해도 모처럼의 가족여행을 포기하진 않았을 테지만요.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정기적으로 봉사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맞벌이인 제겐 매달 몇 만원씩 월급통장에서 자동이체가 되도록 하는 ‘정기후원’이나, 1년에 한 번 열리는 ‘위아자축제’ 같은 행사 때 하루 종일 기증품들을 파는 것보다, 한 달에 겨우 몇 시간씩인 가족봉사단 활동이 훨씬 어렵습니다. 의무나 필요에 의한 게 아니다 보니, 무슨 핑곗거리가 있으면 ‘한번 빠지지 뭐’라는 유혹의 목소리에 넘어가곤 합니다. 자원봉사는 ‘자발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의지가 굳건하지 않다면 꾸준히 지속하기 어려운 일 같습니다.

이번 호 ‘행복동행’은 자원봉사의 그 기본을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자원봉사자에게 “잘한다” “대단하다”며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은 자발성을 더욱 굳건히 다져주는 힘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해지면 어느새 자발성은 실종하고 그 인정을 받기 위한, 그 보상을 얻기 위한, ‘일’이 돼버리고 맙니다. 중고생들의 자원봉사를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됐던 시간인증제가 그렇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단순한 입시 의무사항이 돼, 시간 부풀리기가 일상화됐습니다. 앞장서서 자발성을 독려해야 할 자원봉사센터들이 정부 지원금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현실도 안타깝습니다.

저와 함께 가족봉사단 활동을 하시는 분 중에 쌍둥이 형제 대한·민국이 엄마가 계십니다(아이들 이름도 멋있죠?). 20대 때 우연히 보육원 아이들을 찾아가기 시작해, 자원봉사를 해오신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고 합니다. 늦둥이 아들들도 두 살 때부터 데리고 다녔답니다. 20년을 꼬박 다니신 강남복지관 등 여러 곳에서 상도 받으셨고요. 그분께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자원봉사를 하실 수 있었냐고. “노인이든 장애인이든 내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보면 힘든 현실과 외로움을 잊게 되더라”고 합니다. 그게 가장 큰 보상이랍니다.

자원봉사지원제가 그런 분들께 진정 힘이 되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이 어머니, 그리고 묵묵히 자원봉사를 하고 계신 여러분~.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더 열심히 해볼게요.

김정수 행복동행 에디터, 경원대 세살마을연구원 연구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