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집에 만족한 실착-흑4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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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결승 1국> ○·구리 9단 ●·허영호 8단

제4보(41~47)=백△의 절단으로 판 위엔 전운이 짙게 감돌기 시작했다. 이런 식의 전투 바둑은 맹수의 감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집 바둑에서 필요한 균형감이나 계산 능력은 잠시 접어두고 오직 먹느냐, 먹히느냐의 본능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허영호 8단도 41로 늘어 일전불사의 의지를 표명했고 구리 9단 역시 42로 늘어 자세를 갖춘다. 43은 좋은 감각. 단순히 A에 넘는 것보다 강렬하고 효과적이다.

 구리의 44가 노련하다. 발톱을 감추고 허리를 웅크린 채 한 박자 참는다. 당장 ‘참고도1’ 백1, 3으로 몰아세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흑4의 행마에 오히려 백이 곤란해진다.

 이때가 중대한 고비였다. 44로 웅크렸을 때 허영호는 쉽게 45로 넘었는데(그는 귀의 커다란 실리에 만족했다) 이게 엄청난 판단 착오였음이 곧 드러나게 된다. 45는 ‘참고도2’ 흑1로 일단 살린 뒤 3으로 넘어가야 했다. 숨죽이고 있던 구리는 45를 보자마자 46으로 씌웠다. 흑은 달아날 수 없다. B로 밀어도 C로 두드리면 모양이 흉하게 일그러진다. 이대로 두 점이 잡힌다면 대실패다. 불찰을 깨달은 허영호 8단이 47로 날아간다. 분노 섞인 강수. 그러나 너무 멀다. 구리가 가만 있을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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