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트럭지게차’는 달리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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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철
경제부문 기자

정부는 지난해 3월 산업융합촉진법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미 제품 간, 업종 간 칸막이를 뛰어넘은 융합 신제품이 나오고 있지만 법과 규정이 미비해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런 사례도 조사해 공개했다. 충북 충주의 건설기계 전문 중소기업 SM중공업이 만든 ‘트럭지게차’도 그때 소개됐다.

 이 제품은 트럭의 기동성과 지게차의 작업능력을 결합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기술적으로 특별하거나 어렵지는 않다. 여러 작업장을 기민하게 움직이며 작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현장의 요구를 정확히 읽어냈다. 국내외 특허도 받았다. 현장에선 호평했다. 하지만 2008년 개발된 이 제품은 시장에 나오지 못했다. SM중공업은 이 제품을 건설기계(지게차)로 간주해 승인요청을 했지만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가 자동차(트럭)라며 돌려보낸 것이다. 자동차가 시장에 나오려면 엄격한 성능과 안전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현대차 같은 대기업이 아니고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지식경제부는 이런 사례를 없애기 위해 산업융합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다시 1년3개월이 흘렀다. 산업융합법은 지난 정기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대표 융합상품으로 꼽혔던 ‘트럭지게차’의 사정은 나아진 게 없었다. SM중공업 허윤식 팀장은 “당시 정부의 발표에 기대를 걸었지만 국토부는 요지부동이었다”고 전했다. 행정심판도 내보고, 청와대 신문고도 두드려 봤지만 모두 소관부처로 돌아왔다. 결국 미운 털만 박히고 말았다.

 그동안 이 제품의 소문을 들은 수요자들의 발길이 계속됐다고 한다. 국방부는 이미 구매 예산까지 확보했다. 10여 개 국가에서 수입하겠다며 샘플을 받아갔다. 하지만 모두 무산될 처지다. SM중공업은 마지막 수단으로 해외 합작법인을 세우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정 팀장은 “정부가 지원금을 줘도 모자랄 텐데 애써 만든 유망한 상품의 앞길을 막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산업융합촉진법은 기존 업종·부처 간 칸막이를 넘어서자는 취지다. 하지만 법이 있으면 뭐하나. 법보다 센 정부 부처 간, 업종 간 칸막이가 요지부동이니 말이다. 아직도 침대 길이에 사람 키를 맞추고자 하는 정부, 그런 정부를 상대로 어느 기업이 융합제품 개발에 나서겠는가. 다리를 잘리거나 머리를 뽑히는 것을 겁내지 않을 용기가 있으면 몰라도.

최현철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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