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에 나타난 작가정신…'유럽초기 애니메이션' 상영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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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부터 서울애니메이션 센터에서 상영을 시작한 '유럽 초기 단편 애니메이션'.
이름만 들어도 알수 있을 정도의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과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제작기법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다.

이 행사를 마련한 국제 애니메이션 필름협회 한국지부(ASIFA Korea)는 애니메이션 관계자들과의 리셉션 자리를 마련, "계속적인 거장들의 작품들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국내 작품을 외국에 소개하는 등의 활발한 활동을 하겠다"고 밝히고 첫 상영회를 자축했다.

초기 애니메이션은 어떤 재미가 있을까?
일단 헐리우드식의 재미를 기대하고 상영관을 찾는 사람이라면 지루할지도 모른다. 다른 단편애니메이션 상영전과 같이 여러 작품이 이어져 상영되는 것도 아니고, 아주 기발한 위트나 재미가 깃들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이 필름은 러시아 TV에 상영되었던 52부작 'Animation A to Z'의 일부로 애니메이션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나 그 당시 빛을 보지 못했던 세 거장의 일생을 작품과 함께 담은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다.

에밀 꼴은 최초의 애니메이션 제작으로, 블라지슬라프 스따레비치는 최초의 인형애니메이션으로, 알렉산드르 알렉세이프는 지금은 볼 수 없는 핀스크린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작업을 한사람이 하는 '독립 애니메이션'을 구사했다. (프로덕션 개념의 애니메이션 제작은 1920년 영국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곤충학을 무척 좋아했다는 스따레비치는 그의 모든 작품에 곤충들을 등장시켰다. 그는 직접 제작한 곤충인형으로 애니메이션을 찍었고, 그것이 너무 사실적이라 '악마의 소행'이라는 오해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작품 〈하얀 사랑과 검은 사랑〉을 보면 찰리 채플린과 행동과 표정이 너무 비슷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의 작품이 실사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잘 알수 있다.

또하나 관심을 끄는 것은 핀스크린 애니메이션이다.
알렉세에프가 구사한 핀스크린 기법은 구멍뚤린 판에 수십만개의 핀을 꽂아 빛과 어둠을 만들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현재는 쓰이지 않고 있는 기법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박세형 부교수는 "이 상영회가 뜻깊은 행사이긴 하나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은 만화쪽과 연계가 되어야 하는데, 옛 필름의 환상에 젖어 자꾸만 영화식으로 이해하도록 유도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국내에 40여개의 많은 애니메이션 학과와, 적지 않은 정부지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것을 '작가정신 부족'과 '기획력과 디자인의 후진성'등으로 보고 학계에 있는 사람으로써 책임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 상영회는 작품을 보고 감상에 젖기보다 애니메이션 작가들의 열정과 정신에 감동을 받는 자리가 될 것이다. '유럽 초기 단편 애니메이션' 상영은 서울애니메이션 센터 영상관에서 27일까지 계속된다. 02-771-8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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