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금감원 눈치 보는 홈쇼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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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최지영
경제부문 기자

“내정은 했지만 금융감독원의 민원이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금감원 출신이 아닌 사람으로 임명하고 싶지만, 그러면 금감원에 밉보일까 걱정이다.”

 열흘밖에 안 남은 준법감시인 임명시한을 놓고 TV홈쇼핑업체들이 치열한 눈치작전을 펴고 있다. 업체들은 개정된 보험업법 시행령에 따라 다음 달 1일부터 준법감시인을 의무적으로 둬야 한다. 금융회사에서는 2000년부터 운영돼 온 제도다. 홈쇼핑에서 파는 보험매출이 커지고 소비자 민원도 늘자 홈쇼핑업체에도 준법감시인이 의무화된 것이다.

 준법감시인은 업체에 자료를 요구하면 업체가 성실히 이를 따라야 하고, 직무수행과 관련된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법령에서도 규정돼 있는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문제는 자격 요건이다. 올 1월 24일 개정 때 법령의 자격요건 중 하나에 ‘기획재정부·금융위·금감원에서 2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로서 그 기관에서 퇴임했거나 퇴직한 후 2년이 지난 자’란 규정이 슬그머니 들어갔다. 물론 법엔 보험계리사·공인회계사 경력 2년 이상, 보험회사 경력 5년 이상 등 다른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도 임명할 수 있도록 해놨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홈쇼핑업체 관계자는 “규제기관 경력이 뻔히 자격 요건에 들어 있는데, 금감원 출신 외에 다른 사람을 임명할 간 큰 업체가 어디 있나”고 말했다.

 홈쇼핑업계에선 준법감시인 제도가 의무화되기 전부터 금감원 출신을 자문위원이나 고문으로 영입했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출근하고 약 5000만원 이상씩의 연봉을 보수로 챙겨 왔다. 홈쇼핑업체 관계자는 “굳이 법적으로 둘 필요가 없는 자문위원도 전원 금감원 전직 간부들이었는데, 준법감시인이라고 다르겠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A사는 금감원 부원장급 출신 인사를, B사는 금감원 국장급 출신을 준법감시인으로 내정했다. 물론 금감원 출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전문성을 갖췄거나 소비자에게 도움되는 쪽으로 더 잘 감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규제기관과의 부드러운 관계를 위해 금감원 출신을 임명한 것이라면 금감원 출신 낙하산 인사가 한참 논란이 되는 요즘엔 적절치 않다. 홈쇼핑 준법감시인 제도가 낙하산 논란을 벗어나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정착되길 바란다.

최지영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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