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어린 생명 살려낸 ‘사랑의 인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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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첨단종합병원의 정성헌(맨 왼쪽) 대표 원장이 크리스티나의 병실에서 가족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러시아 사할린에 사는 크리스티나(4·여)에겐 꿈이 있다. 또래 친구들처럼 마음껏 운동장을 뛰노는 것이다. 2년여 간 앓아온 만성 편도선염(아데노이드)이 크리스티나를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는 아이로 만들었다.

 크리스티나의 부모는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사할린에서 가장 큰 도시인 유즈노사할린스크의 병원들을 모조리 다녔지만 허사였다. 사할린의 낮은 의술 수준으론 고칠 수 없었던 병이었다. 딸의 병은 날로 깊어졌고, 목이 아파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는 데다 감기를 끼고 살았다. 결국 지난해에는 유치원마저 그만뒀다. 심할 경우 돌연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았다.

 절망의 순간에 크리스티나에게 꿈같은 연락이 왔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첨단종합병원에서 무료 수술을 제안해 온 것이다. 병원 측의 수술 제안은 트로트 가수 이혜미(49)씨가 크리스티나의 딱한 사연을 첨단종합병원에 알리면서 이뤄졌다.

 크리스티나는 14일 첨단종합병원에서 1시간 가량 수술을 받은 끝에 편도선을 무사히 절제해 냈다. 크리스티나는 20일 건강한 몸으로 사할린 집으로 돌아간다.

 크리스티나의 엄마 김제니(32)씨는 “딸의 몸무게가 13㎏까지 줄고, 유치원마저 그만뒀을 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딸에게 새로운 삶 기회를 주신 한국의 의사 선생님들이 너무나 고맙다”고 말했다.

 첨단종합병원은 국경을 초월한 인술을 펼치고 있다. 2009년에도 러시아에 사는 고려인 4세 황보라(15)군의 뇌수술을 무료로 해줬다. 황군은 교통사고를 당해 거동을 하지 못했으나 수술 후 몸 상태가 급속히 호전됐다. 황군 수술 이후 사할린·블라디보스톡 등 러시아 환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수준 높은 의술과 환자에 대한 배려가 입소문을 타면서 매년 60~70명이 첨단종합병원을 찾고 있다.

 이 병원은 러시아 외에 필리핀·캄보디아 등에 대한 의료봉사 및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의사 41명, 간호사 170명 등 총 360여 명의 직원 가운데 50여 명이 봉사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병원 부근 불우이웃에 대한 의료 봉사와 각종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1월에는 캄보디아 출신 이주여성이 돈이 없어 친정에 가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항공권을 선물했다.

 첨단종합병원의 정성헌(47) 대표 원장은 “어린 크리스티나가 전신마취가 필요할 만큼 힘든 수술과정을 잘 견뎌 준 덕분에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며 “앞으로도 사회적인 기여 움직임에 동참하는 병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최경호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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