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법인세율 인하 = 부자 감세’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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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시행을 6개월여 앞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여부가 다시 불투명해졌다. 민주당에 이어 최근 한나라당도 법인세 감세 철회 입장을 밝혔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민심 잡기에 여념 없는 정치권이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등 복지 슬로건을 앞다퉈 내세우면서 재원 조달 방안으로 법인세율 인하 취소를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 속에서 기업들은 혼란스럽고 불안하기만 하다. 법인세율 인하 방침이 2008년 국회를 통과했을 때 많은 기업인은 기업 하기 좋은 조세환경 조성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런데 1년 후 세율 인하 시기가 2010년에서 2012년으로 2년간 유예된 데 이어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법인세율 인하 취소 주장이 제기되면서 정책의 신뢰성과 예측가능성이 무너졌다. 기업들은 투자계획 같은 경영전략 수립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한국의 기업 환경에 돌아서는 외국 기업들도 늘고 있다.

 법인세율 인하 취소를 주장하는 쪽은 인하가 대기업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부자 감세’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감세 목적은 기업의 부담을 덜어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이로 인한 경제성장의 혜택을 국민 전체가 나누어 갖자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현 정부 들어 추진한 감세정책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투자가 기대만큼 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감세정책은 우리나라가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빠른 속도로 회복할 수 있도록 기업들의 의욕을 북돋웠던 원동력이었다.

 조세정책은 주변국과의 투자유치 경쟁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세계 각국은 자국 기업의 경쟁력 확보와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법인세율을 경쟁적으로 내리고 있다. 중국과 대만을 보자. 중국은 2008년에 법인세율을 33%에서 25%로, 대만은 2010년 25%에서 17%로 크게 인하했다. 싱가포르와 홍콩의 법인세율도 각각 17%, 16.5%로 우리나라의 24.2%(지방세 포함)보다 훨씬 낮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세율 인하가 취소되면 국내 기업들의 생산기지 해외 이전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고 외국 기업의 투자 유치도 기대하기 어렵다.

 소니가 삼성전자에 뒤진 배경 중 하나도 법인세다. 소니가 39.5%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법인세를 내는 동안 삼성은 24.2%의 상대적으로 낮은 법인세 부담으로 과감하고 적극적인 투자를 할 수 있었다. 높은 법인세율의 부작용을 깨달은 일본은 최근 자국 기업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법인세율 인하를 추진 중이다. 이런 국제적 추세 속에서 우리나라만 대내외적으로 약속한 법인세율 인하를 취소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감세를 하면 기업 경쟁력이 높아져 중장기적으로 세수 증대를 가져온다는 것은 통계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우리나라 법인세율은 2000년 30.8%에서 2010년 24.2%로 인하됐지만 법인세수는 19조7000억원에서 41조원으로 2배 이상이 됐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OECD 21개국의 평균 법인세율은 1990년 36.7%에서 2007년 31.1%로 내렸으나 법인세수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에서 3.7%로 늘었다. 세율 인하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한 경제성장이 세수를 오히려 증대시킨 것이다.

 당장은 기업으로부터 더 많이 거둔 세금으로 친서민·복지 예산을 충당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경제성장으로 인한 세원 확대가 아니라 주변국보다 높은 세율로 거둬들일 수 있는 세수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는 복지정책은 부채로 지탱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할 짐이 된다. 국가 전체적 차원에서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때다. 어부지리 격으로 이웃나라가 웃을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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