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법체계, 비국적자 위한 배려 아직 부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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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호 16면

“6·25전쟁의 피란민도 난민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이 난민의 고통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겠죠. 한국이 난민 문제에 있어서도 글로벌 리더가 됐으면 합니다.” 앤 메리 캠벨(사진)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 대표의 표현은 부드러웠지만 내용은 따끔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앤 메리 캠벨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 대표

-난민 신청자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생존이다. 난민 지위 신청자에겐 1년 동안 취업허가가 나지 않는다. 지원금도 없다. 당장 먹고살 방법이 없는 거다. 결국 불법 취업을 해야 의식주를 겨우 해결할 수 있다. 물론 난민 지위를 인정하려면 심사 절차가 필수다. 그러나 많은 경우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까지 행정소송을 하느라 몇 년을 보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난민들은 정치·종교·인종 등의 이유로 고국에서 박해를 받다 쫓겨나듯 한국으로 온 신세다. 돈이 풍족할 리 없다.”

-이들이 한국을 택하는 이유는.
“한국은 민주화와 경제발전에 모두 성공했다. 따라서 난민들에게 한국은 좋은 이미지로 인식돼 있다. 그리고 이미 동료들이 한국에 와 있기 때문에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한국행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 법무부의 난민 지원 노력은.
“법무부의 경우 담당 인력이 부족한 데다 자주 바뀐다. 한국 법원에 난민 문제를 전담하는 판사가 없는 것도 상황을 어렵게 한다. 물론 그간 많은 진전이 있었다. 난민에 대한 스터디 그룹을 구성한 법조인들도 있고, ‘공감’과 같은 프로보노(pro bono:공익을 위해 일하는 전문가들 지칭) 변호사들도 많은 힘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법 체계에 비국적자들을 위한 배려가 아직도 부족한 것 같다. 영어 소통이 어려운 난민들의 통역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지만 세심한 배려가 없는 상황도 발생한다. 일례로 자신이 성폭행 당한 경험을 남자 통역사에게 낱낱이 설명해야 했던 여성도 있다. 생존을 위해 성적 수치심을 억눌러야 하는 상황인 거다. 종교 문제로 도망쳐온 신청자에게 대립하는 종교집단에 속한 사람을 통역으로 붙인 경우까지 있었다.”

-아이를 낳아도 출생신고가 어렵다는데.
“난민 신청자들이 아이를 낳을 경우, 한국 국적 취득이 어렵다. 자국 대사관을 통해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난민은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제 발로 자국 대사관에 들어가 스스로의 존재를 알릴 수가 없다. 결국 많은 아기들이 무국적자가 되고, ‘존재하지 않는 아이’로 전락한다. 바로 어제도 난민 커플이 아이를 낳았다. 축복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난민 신청자들의 아이들은 기본적 혜택도 받지 못한다. 교육도 문제다. 학교장의 재량으로 입학을 할 길은 다행히 열려 있지만 근본대책이 필요하다.”

-불법체류자 양산을 우려해 난민 인정에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난민 신청자들은 천국과 지옥 사이인 연옥에서 헤매는 존재들이다. 난민 지위를 획득하기 전에 이들은 신청등록증 한 장만 들고 살아가야 한다. 1년 후 취업은 할 수 있으나 여전히 사람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의료·복지 혜택에선 소외된다. 그나마 아시아 쪽에서 온 난민 신청자들은 한국 사회에 비교적 잘 적응하지만 한눈에 외국인으로 보이는 난민 신청자들은 한국 사회에 녹아 들지 못한다.”

-국회 측에선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이 2009년 발의한 ‘난민 등의 지위 및 처우법’ 법안이 여전히 계류 중이다. 이달 중엔 꼭 통과됐으면 한다. 난민의 강제송환을 금지하고 신청자들에게도 생계비를 지원하는 법안의 내용이 그대로 통과되어야 한다. 마침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이고, 올해는 세계 난민협약 체결 6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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