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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진 ‘슬로 시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23호 10면

‘슬로 시티’ 악양은 몹시 바쁩니다. 모내기를 끝내기가 무섭게 매실을 따기 바쁘고, 감나무에 약 치기 바쁩니다. 들판이나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느린 마을’ 걸음이 아니라 ‘빠른 마을’ 걸음입니다. ‘느린 삶’을 지키려는 손발은 빠릅니다. 감나무 약을 치고 바쁘게 지나치는 경운기에서 농사 짓는 이의 밝은 미소를 보았습니다.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저도 적지만 매실과 감 농사를 짓는지라 요 며칠 죽어났습니다. 저는 벼락치기 농사를 짓습니다. 도저히 미룰 수 없을 때까지 내내 놀다가 후다닥 풀 베고, 매실 따고, 감 약 치고 손을 텁니다. 일을 몰아치기로 하니 팔, 다리, 허리는 며칠 끙끙 앓아도 그동안만큼은 농사꾼인 양 어깨는 펴고 다닙니다. 밭 면적에 비해 수확은 영 엉터리라 제 농사는 헛방입니다. 밭 근처의 아는 분들을 만나면 ‘나무에게 밥(퇴비)도 안 주고, 밭 관리는 엉망으로 하며 따먹기만 한다’는 구박을 시도 때도 없이 듣습니다. 그러나 구박은 심해도 그분들 도움으로 근근이 때를 맞춰 매실도 따고, 감도 따고, 곶감도 해나갑니다. 그러니 저는 어디 가서 농사 짓는다는 소리를 못합니다. 시늉만 냅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중정다원’을 운영하며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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