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2000명 여자와 사귄 남자 휴 헤프너, 미국을 바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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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미스터 플레이보이
스티븐 와츠 지음
고정아 옮김, 나무이야기 541쪽, 2만5000원

예정대로라면 오늘 18일 평전 『미스터 플레이보이』의 주인공 휴 헤프너가 새 장가를 들 뻔 했다. ‘플레이보이’ 창업자인 84세의 그가 20대 초반의 약혼녀 해리스와 올리는 세 번째 결혼식 말이다. 며칠 전 보도대로 약혼녀의 느닷없는 변심에 식은 일단 취소됐다.

 그런데 묘하다. ‘바람둥이 할배’에 대한 사람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이 여간 아니다. 그래 보니 그는 누드잡지 장사꾼이 아닐까? 쾌락교(敎) 교주를 자리매김하는 이런 저술까지 필요할까.

미국의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의 창설자 휴 헤프너는 잡지에 글도 연재했다. 1962년부터 3년간 25회에 걸쳐 ‘플레이보이 철학’을 기고했다. 사회적·성적 문제에 대한 모든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며칠씩 잠도 자지 않고 글을 썼다고 한다. [나무이야기 제공]

 1953년 창간된 이 잡지에는 ‘도덕적 유독성 쓰레기’라는 비난이 지금도 끊이지 않는데, 역사학자까지 나서 평전을 써야 할까. 책을 본 결론은 “가치 있다”는 쪽이다. 그것도 아주 충분하다. 헤프너가 문제적 인간이기 때문이다. 20세기 대중문화 흐름을 살피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봐야 하는데, 21세기 초입 지금까지 ‘플레이보이’는 막강하다. 전성기에는 못 미친다지만, 월 평균 320만 부를 찍어낸다. 게다가 창업자 헤프너는 이미 전설로 통한다.

 무엇보다 그는 문화의 전복자(225쪽)로 봐야 한다는 게 이 책 시각이다. 첫 기여가 성 혁명. 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도 빅토리아시대 도덕, 혹은 청교도 윤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던 미국에 강렬한 성적 자유를 그가 선물했다. 섹스가 엄연히 인간경험의 하나인데도 괜히 쉬쉬해오던 전통을 종식시킨 것이다. 그와 짝을 이루는 게 ‘멋진 삶’에 대한 비전이다. ‘플레이보이’는 좋은 옷과 비싼 차, 도시적 레저 등을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이라며 기꺼이 긍정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창간호의 첫 누드 걸로 메릴린 먼로를 등장시킨 이래 소피아 로렌·브르짓 바르도 등을 차례로 벌겨벗겨 소개했다고 사회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에로티시즘이란 게 그만큼 힘이 세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실은 ‘플레이보이’의 에로티시즘 위에 뿌려진 적정량의 지성과 철학의 힘이 컸는데, 그건 헤프너의 잡지 편집자로서의 정교한 계산에 따른 것이다.

 이를 테면 잡지에 매번 실리는 단편소설과 인터뷰는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역시 관심은 헤프너란 위인이다. 많은 이들이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질탕한 섹스, 젊고 예쁜 여자에 둘러싸인 행복한 남자 이미지부터 떠올린다. 책을 보니 그건 사실이다. 지금까지 그가 잠자리를 했던 여자는 2000명이란 고백이 나온다. 거기까지 일일이 세어보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잊기로 했다.

 세계 최고의 난봉꾼, 허가 받은 바람둥이이나 그럴 수도 있을까. 그는 호화 전용비행기에, 유명인사와 함께 하는 화끈한 파티광으로도 유명하다. ‘플레이보이’가 전한 ‘멋진 삶’이란 어른을 위한 디즈니랜드였는데, 그런 판타지를 만들었던 주인공인 그는 실제 그 안에 빠져 살았다. 그 세계의 꽃은 역시 여성이다. 특히 그가 한결같이 좋아했던 건 20대 초반의 여자였다. “그 나이에 존재하는 순수함과 다정함이 좋기 때문”(286쪽)이란 까닭에서였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클럽·TV쇼 등으로 영역을 넓히던 플레이보이 제국의 권력자이던 그는 뜻밖에도 완벽주의자이자 일 중독자였다. “여자는 취미였을지 모르지만, ‘플레이보이’는 그의 인생이었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그걸 보여준다. 반세기 전 시작된 ‘플레이보이’ 메시지가 상식이 된 세상이 지금이다. 그럼에도 일과 놀이에 대한 그만의 유쾌한 철학이 여전히 매력적이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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