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TRA 떠나는 조환익 사장 “퇴임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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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익 KOTRA 사장이 17일 캐주얼 차림으로 출근하고 있다. 금요일에 캐주얼을 입는 것도 그가 KOTRA 사장으로서 꼭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였다.

‘오늘은 버킷 리스트(Bucket List)에 대해 얘기할까 합니다. 회사 1층 로비에서 점심 약속한 사람을 기다려보고 싶습니다. 새내기들과 노래방 가서 같이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동아리 따라 풀꽃 사진을 찍어봤으면 합니다. 해외출장 가서 KOTRA 직원 집에서 밥 한 끼 먹어 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이달 말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조환익(61) KOTRA 사장이 이달 초 이런 e-메일을 전 직원들에게 보냈다. 2008년 7월 사장이 된 뒤 꼭 하고 싶었으나 못 한 일들을 적어 보낸 것이다. e-메일의 제목은 ‘KOTRA 가족들에게’. 가끔씩 쓰는 ‘직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었다.

 조 사장의 버킷 리스트는 임직원들과 좀 더 어울려보고 싶었다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는 이달 16일 서울 염곡동 KOTRA 집무실에서 한 인터뷰에서, 버킷 리스트를 직원들에게 전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물러나기로 마음먹은 얼마 전의 일입니다. 외부 인사와 점심을 하러 회사를 나가다 보니 로비에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는 약속한 사람들을 기다리더군요. 돌이켜보니 저는 늘 외부와의 약속 때문에 한번도 그래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직원들에게 띄웠습니다.” 그는 “곰곰이 돌아보니 결국 하고 싶었던 일들은 하나같이 직원들과 사람 냄새가 나는 방식으로 얘기를 나누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e-메일을 보낸 뒤 효과도 봤다. 사진 동아리에서는 “야외 출사를 떠나자”는 연락이 왔다. 해외 주재 직원들로부터는 “우리 집에서 밥 한 끼 대접해 드리겠다”는 답신이 쏟아졌다. 14일엔 새내기들 대신 팀장들과 노래방에 갔다. 조 사장은 가수 이남이의 ‘울고 싶어라’를 불렀다. 가사 중에 ‘떠나 보면 알 거야/아마 알 거야’라는 대목이 퇴임을 앞둔 자신의 심경을 잘 나타내주는 것 같아 이 노래를 택했다고 한다.

 조 사장은 옛 산업자원부에서 주로 통상과 관련된 업무를 맡았다. 이런 경력을 인정받아 2008년 무역·투자 활성화를 담당하는 KOTRA의 사장이 됐다. 그는 2008년과 2009년 공공기관장 평가에서는 ‘우수’ 판정을, 정부가 17일 발표한 2010년도 평가에서는 ‘양호’ 등급을 받았다. 전체 공공기관장 중 3위 안에 드는 성적이다. 그럼에도 최근 행해진 KOTRA 신임 사장 공모에 참여하지 않았다. 조 사장은 “KOTRA는 내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변신을 해야 한다”며 “이 일은 새 선장의 몫이라고 생각해 물러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퇴임 후에는 대학 강단에 설 예정. 조 사장은 “1976년 수출 100억 달러 시대에 처음 정부에서 수출 관련 업무를 맡은 뒤 무역 규모가 1조 달러를 넘어서는 올해까지 수출 현장을 생생하게 지켜봤다”며 “‘Korea’라는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맨손으로 세계 시장을 뚫었던 한국 수출인들의 진취적 기상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버킷 리스트=잭 니컬슨, 모건 프리먼 주연의 영화 제목으로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은 일’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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