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떠나려 머무는 곳, 88만원 세대의 고시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자기만의 방
정민우 지음, 이매진
384쪽, 1만7000원

고시원은 집 아닌 집이다. 이른바 ‘장박’(장기숙박)이 드물고 단기로 거주하는 이들의 순환률이 높다는 점에서다. 그런데 한 조사에 따르면, 10만 명 정도가 서울의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1000만 서울 인구의 1%다. 사람들은 왜 고시원에 들어가며, 어떻게 그곳에서 살며, 왜 고시원을 떠날까. 이 질문으로 시작하는 책은 한국사회 청년세대의 삶을 들여다보는 틀로 고시원을 선택했다.

지은이에 따르면, 고시원은 서울에서 중하층 계급 청년세대가 주거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가장 싼 방’이며, 비용을 아껴 더 나은 주거공간으로 떠나기 위한 ‘전략적 인내의 공간’이다. 답답한 가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도피처이기도 하다.

 지은이가 고시원에서 직접 지내보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들여다본 풍경은 이렇다. 이름은 고시원이지만, 그곳에서는 공부가 잘 되지 않고(실제로 이곳에서 공부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가장 중요한 옵션은 창문 있는 방이다. 사람들은 서로 마주치지만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보지도, 보이지도, 마주치지도, 말을 섞지도 말아야 한다는 고시원의 예절”이다. “공동의 주거는 사회적 연대감을 형성할 수도 있지만, 고시원에서 같이 산다는 것은 존재들의 익명성 뿐”이란다.

 뿐만 아니다. 고시원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 기간을 자신의 삶에서 “통째로 들어내고 싶은” 과거로 기억한다. 때문에 고시원 살이란 ‘나는 이곳에 살지만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역설로 축약된다.

 이 책은 서울이라는 공간, 상승에 대한 사회적 강박, 집의 의미, 빈곤한 청년세대, 가족과 사회 공동체 등 한국 사회의 이면을 세밀하게 드러냈다. 본래 석사 논문이던 것을 일반 독자를 위해 다시 풀었다. 논문과 비(非)논문 사이의 문턱을 매끄럽게 깎아내지는 못했지만, 날카로운 감성의 사회학도가 부지런히 탐구한 내용은 『88만원 세대』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를 잇는 청년세대 탐구서들의 맥을 잇고 있다.

이은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