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집 『밤 하늘의 바둑판』 낸 오세영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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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간결한 극서정시집을 각각 발표한 오세영 시인(오른쪽)과 유안진 시인. [연합뉴스]

중진시인 오세영(69)씨가 이른바 ‘난해시’를 쓰는 젊은 시인을 강하게 질타했다. 16일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새 시집 『밤 하늘의 바둑판』(서정시학) 출간 간담회 자리에서다. 오씨는 “기자들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며 작심한 듯 난해시 시인들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요즘 우리시가 너무 난해하다. 정신분열적이다. 이대로 가다간 시 자체가 소멸될 수도 있다고 본다. 일종의 자해 현상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또 난해한 시가 일부 젊은 시인들 사이에 번지는 것에 대해 “아내가 도망쳐 홀로 된 남편이 엉뚱한 여성을 붙들고 인질극을 벌임으로써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아내를 되찾으려는 것 같은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도망친 아내’를 시(詩)로 바꿔 생각하면, 제대로 된 시를 쓸 능력이 없는 시인이 사건이라도 일으켜 관심을 얻으려 한다는 얘기다.

 오씨가 겨냥한 난해시 시인은 2000년대 중반 낯선 언어실험으로 시단에 파장을 몰고 온 미래파 시인들, 지난해 말 문예중앙 시선(詩選) 1번으로 장시집 『농경시』를 출간한 조연호 시인 등인 것으로 보인다.

 오씨는 “시는 메시지와 감동을 통해 인간의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향상시키는 데 기여해야 함에도 난해시 시인들은 이런 기본적인 윤리성마저 저버리는 것 같다”고 했다. 또 “미래파 시인들이 한동안 시단을 뒤흔들었는데 지금은 남아 있는 게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오씨는 1965년 박목월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80년대 중반 서울대 국문과에 임용돼 2007년 정년 퇴임했다. 퇴임 인터뷰에서 “젊은 시인들이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정신분열적이고 자극적인 작품을 쓰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만큼 소통 안 되는 시가 일으키는 폐단이 크다고 보는 입장이다.

 오씨의 이번 시집은 짧고 알기 쉬운 ‘극(極)서정시’를 집중적으로 소개하자는 취지로 올 3월 시작한 ‘서정시학 서정시’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오씨의 시집과 함께 원로 시인 김종길(86)씨의 『그것들』, 유안진(70)씨의 『둥근 세모꼴』 등이 출간됐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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