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처럼 흐르는 노래들, 14번째 곡이 끝나면 찡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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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의 솔로 앨범 ‘저스트 라이크 미’를 발표한 알렉스. 그 특유의 부드러운 음색이 사랑의 추억을 환기시킨다. [김상선 기자]

그러니까 이런 음반은 반칙이다. 무려 14곡이 한꺼번에 실렸다. 디지털 싱글로 재미 보는 게 요즘 음악 시장의 생리다. 그런데 이 남자, 알렉스(32)는 고집스럽다. “음악은 시간이 흐른 뒤에 손으로 만져지는 무언가 남아야 한다”고 믿는다.

 음악은 추억이므로, 그래서 낡은 사진 꺼내보듯 CD를 만지작거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게다. 알렉스가 3년 만에 솔로 2집 ‘저스트 라이크 미(Just Like Me)’를 발표했다.

 앨범은 묵직하다. 많은 곡이 실려서가 아니다. 애끓는 노랫말과 서글픈 멜로디가 맞물려 있는 타이틀곡 ‘미쳐보려 해도’만 들어봐도 안다. 알렉스 특유의 매끄러운 음색으로 들려주는 온갖 꼴의 사랑 노래가 심장을 드세게 긁는다.

 “음반에 실린 곡의 순서를 마치 공연 순서 짜듯 배열했어요. 은근히 시작해서 감동에 젖어 끝나도록 말이죠. 마치 조명이 켜지고 커튼이 내려갈 때까지의 공연처럼…. 앨범의 모든 곡을 차근차근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이번 앨범엔 국내의 번뜩이는 작곡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러브홀릭의 강현민과 이재학, 심현보 등이 알렉스의 음색과 꼭 맞는 멜로디를 건넸다. 특히 싱어 송라이터 김동률이 곡을 쓴 ‘같은 꿈’은 김동률표 발라드와 알렉스표 로맨틱 감성이 스미고 짜인 수작이다.

 “제가 일일이 만나거나 전화를 걸어 곡을 부탁 드렸어요. 인복(人福)이 참 많죠? 하하. 시작 단계부터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눴더니 제게 딱 맞는 곡들이 나온 것 같아요.”

 알렉스는 프로젝트 그룹 클래지콰이의 보컬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다 MBC 예능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로맨틱 매력남으로 출연해 인기가 치솟았다. 자연스레 여성 팬은 급증했고, 남성 팬들은 그에게 눈을 흘기기 시작했다. 이 대목에서 그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한때 네티즌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제가 일종의 대명사였죠. 어딘가 막 대해도 좋을 사람…. 일부러 게시판을 다 찾아서 읽었어요. 그러다 보면 조금씩 무뎌지거든요. 어쨌든 이런저런 소란은 제 실력으로 인정 받으면 된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그는 그저 열심히 뛰었다. 예능도 출연하고, 드라마에서 연기 실력도 쌓았다. 최근엔 KBS 드라마 ‘웃어라 동해야’에서 고시생 이태훈 역할을 맡아 기존의 로맨틱남 이미지를 한번에 무너뜨리기도 했다. 그는 “연기도 음악도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란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했다.

 알렉스의 본명은 추헌곤이다. 헌곤은 서울 여의도에서 중학교까지 다니다 캐나다로 이민을 가 알렉스가 됐다. 여의도에 살 때 동네 음반 가게를 매일처럼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때 샀던 강산에 1집 카세트 테이프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이를테면 가수 알렉스의 감성은 카세트 테이프에 가깝다. 지독한 아날로그다. 그래서 고집스레 14곡짜리 정규 앨범을 낸다. 음악을 빚어내는 감성만큼은 ‘알렉스’보다 ‘추헌곤’에 가까운 것 같다. 정겹고 아련한 뮤지션이다.

글=정강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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