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SC제일, 한국 은행인가 외국 은행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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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

SC제일은행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이 은행은 대주주가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SC)이지만, 뿌리는 82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토종 은행이다. 하지만 요즘은 아예 외국 은행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고, 국내 금융계에서도 주변인처럼 된 지 오래다. 왜 그럴까. 몇 달간 이 은행을 취재하며 내린 결론은 한국 시장에 적응하려는 SC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청와대·경제부처·경찰·국세청 등보다 취재가 어려운 곳이 SC제일은행이다. 전국 400개의 영업점을 가진 시중 은행이지만 언론에는 철벽같은 방어벽을 치고 있다. 기자가 공식적으로 통화할 수 있는 담당자는 5∼6명의 홍보 관련 임직원, 그리고 이코노미스트 한 명이 전부다. 이외의 사람에게 회사 현안을 물어보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SC 본사의 커뮤니케이션 지침 때문이란다.

 국내 최대의 딜링룸을 가지고 있지만, 관계자들에게 그날 외환시장에 대해 물어보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다른 은행들은 허용한다. 농협 전산망 해킹 사건 당시 각 은행들의 전산 보안 실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도 이 회사 부분은 비워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는 약과다. 지난달 30일 이 은행 노조원들이 파업을 했다. 고객에게 불편을 주는 파업을 강행하는 노조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노조 입장을 들어보려 했다. 하지만 SC 측은 노조의 연락처를 알려줄 수 없다고 버텼다. 기자는 콜센터, 114 등을 수소문해 전화번호를 알아내야 했다.

 영업에서도 SC는 ‘마이 웨이’를 고집한다. 생산성을 높이겠다며 올 상반기까지 27개 영업점을 폐쇄했다. 그러면서 대출 모집인에게 대출액의 3.6%를 수수료로 떼어주는 ‘고수익 고위험’ 대출에 매달리고 있다. 다른 은행의 평균 수수료(0.5%)에 비해 월등히 높다. 국내법상 허용되지 않는 백금 대여(메탈론) 영업을 하다 감독 당국에 적발되자 “SC 본사가 했다”고 둘러대기도 했다.

 최근 다시 불거진 한국 철수설에 대해 이 회사는 공식 부인했다. “한국을 떠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리처드 힐 은행장)이라고 했다. 진심이라 믿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믿을 이유를 좀체 찾을 수 없어 고민이다. SC 측이 이번엔 기자의 이런 고민을 풀어줄 수 있을까.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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