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issue &] 한·중·일 ‘불신의 100년’ 끝내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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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오영호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100년의 불신. 어떤 학자는 한·중·일 관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1894년의 청일전쟁에서 시작해 1910년 한·일 강제병합에 이르는 십수년간의 시공간은 21세기의 지금까지도 세 나라를 옭아매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2006년 10월 아베 총리의 중국 방문에서 2008년 5월 후진타오 국가 주석의 방일에 이르기까지 총 네 차례의 왕래를 통해 ‘파빙지려(破氷之旅:얼음을 깨는 여행)’니, ‘난춘지려(暖春之旅:따뜻한 봄날의 여행)’니 호들갑을 떨었지만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 등이 불거지면서 언제 그랬느냐는 모습이다. 한·일 관계 역시 한류의 열기가 열도를 달구고 대지진을 위로하는 따뜻한 정성이 현해탄을 건넜지만 일본 교과서의 독도 자국 영토 표기로 하루아침에 식어버렸다. 한·중 관계는 2002년 고구려사와 동북공정 문제로 틈이 벌어지더니 주기적으로 상호 감정 섞인 비난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어쩌면 역사적 악연으로 얽힌 나라끼리의 화해란 성립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시점에서는 그런 게 가능할지 몰라도 세대와 환경이 바뀌면 언제 화해를 했었느냐는 듯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세 나라는 앞으로도 계속 질시와 증오에 휩싸여 100년의 불신을 200년, 300년으로 연장할 것인가.

  동북아 지역 바깥의 역사는 갈등을 겪는 나라 사이에도 얼마든지 협력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두 번이나 세기의 전장이 된 유럽이 그랬고 각축과 경쟁으로 점철된 동남아와 중남미가 그렇다. 이들은 민감한 정치·사회보다 소프트한 경제 쪽에서 실마리를 풀어간 덕분에 꽤나 희망에 찬 길을 걷고 있다.

  한·중·일 3국에도 기회가 찾아왔다.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했던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가 서서히 낮아지면서 세계경제의 중심축이 동아시아로 옮겨 오는 모습이 한층 뚜렷해진 것이다.

  그간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세계가 주목할 만한 국가들이 꾸준히 배출됐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서 기적처럼 부흥해 1970~80년대를 주름잡았던 일본, ‘네 마리의 용’이란 찬사를 들으며 90년대를 대표했던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 그리고 2000년대 들어 브릭스(BRICs)를 대표하는 중국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서도 한·중·일 3국의 역량은 출중하다. 지난해 말 현재 세 나라의 인구는 전 세계의 22.3%인 15억5000만 명으로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압도한다. 국내총생산(GDP)의 합은 12조4000억 달러로 NAFTA(17조3000억 달러)와 EU(16조2000억 달러)를 뒤쫓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연구원(ADBI)은 한·중·일에 아세안까지 합친다면 경제 규모가 2014년 미국을 추월하고 2020년에는 EU마저 앞지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한·중·일 3국은 지역 통합을 향한 여정에 나서야 한다. 5단계 경제 통합론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벨라 발라사의 ‘자유무역협정(FTA)-관세동맹-공동시장-통화동맹-경제통합’ 유형에 따른다면 FTA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다. 2005년의 한·중·일 공동연구는 한·중, 한·일 양자 간보다 3국 간 FTA가 더 이롭다는 결론을 내놓기도 했다.

 한·중·일 경제협력은 비틀스가 해산 직전 불렀던 노래 제목처럼 ‘길고 구불구불한 길(The long and winding road)’을 가는 것에 비유할 만하다. 터놓고 대하기에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고, 그간 쌓은 신뢰는 종잇장처럼 얇기만 하다. 하지만 그 길이 음울한 과거를 뒤로하고 공동 번영으로 안내해 준다면 들어서지 못할 것도 없다. 그 길은 잘 가기만 하면 한·중·일 모두에 영광을 안겨줄 뿐 아니라 장차 아세안까지 아울러 진정한 아시아 시대를 열어줄 것이다.

오영호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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