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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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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산업.메디슨.다우기술.새롬기술 등 주요 벤처기업 대표들은 지난달 26일 "1백억원을 공동 출자해 국민벤처펀드를 조성하는 지주회사를 설립하겠다" 고 발표했다.

성공한 벤처기업들이 자금을 모아 다른 벤처기업을 키우는 데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개별적으로 신생 벤처에 대한 투자, 인수.합병 등에 나서는 벤처기업도 급증하고 있다.

여러개의 벤처기업을 거느린 '벤처형 지주회사' 로 발돋움하겠다는 복안이다. 올들어 인터넷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는 삼성.금호.코오롱 등 대기업들도 벤처형 지주회사로의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온 나라를 뒤흔드는 벤처열풍 속에서 기존 대기업.벤처기업 가릴 것 없이 미래 인터넷 벤처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몸집 불리기가 본격화된 것이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본뜬다는 일부 비판도 있고 아직 딱 부러지는 한국적 모델도 없지만 가는 방향은 분명 지금까지의 패턴과 다르다.

◇ 한국형 벤처 모델 찾기〓벤처기업 육성 모델은 기업별.국가별로 차이가 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사는 사내 유망사업분야를 분사(分社)시켜 자회사로 육성하는 방식을 쓴다(Spin-Off모델). MS가 지분 1백%를 소유한 채 자회사를 육성하고, 필요한 기술 등을 아웃소싱한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이와 달리 피(被)투자회사의 지분을 30% 정도만 소유한 채 투자기업끼리 네트워크를 구성, 순수 지주회사로서의 역할만 하며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벤처 지주회사들은 다른 벤처기업을 인수하거나 타 기업에 투자해 자회사로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분사도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다 쓴다. 관련 기술 확보를 통한 시너지효과가 첫째 목표다.

5개의 자회사를 둔 새롬기술의 오상수 사장은 "국내에 연구센터를 설립해 이를 중심으로 하는 기술 지주회사를 만들 계획" 이라고 말했다.

최근 앞다퉈 벤처 투자에 나서는 삼성.SK.LG 등 대기업들도 기술 획득과 자본 이득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김정호 박사는 "벤처기업의 타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세계적인 조류로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면에서 긍정적" 이라고 강조했다.

벤처 경영을 통해 번 돈을 다시 벤처에 투자한다' 는 선순환(善循環)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벤처 투자를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커뮤네트웍의 이강우 박사는 "관련 분야 투자를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 시너지효과를 올린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기존 사업과 아무 관련없는 분야에 투자해 문어발식 확장을 하는 것은 인터넷을 앞세운 선단식 경영에 불과하다" 고 말했다.

특히 벤처기업들이 조성한 투자펀드는 경쟁업체 또는 잠재적 경쟁자에 대한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어 성공한 벤처의 자양분이 골고루 퍼지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도 최근 "벤처기업들이 넘치는 자금으로 비관련 사업쪽에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고 지적했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자율적인 정화 캠페인을 통해 벤처기업들의 비관련 분야 투자를 자제토록 하는 등 한국형 벤처의 모델을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기술연구원의 박종오 원장은 "이런 지적 역시 관치(官治)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증거" 라며 "기술.자금 등은 부족한데 세계시장으로 나가야 하는 어려운 환경에서 일정의 크기와 무게(critical mass)를 갖기 위해 뭉치는 것은 상당기간 좋은 한국적 모델로 평가될 수도 있다" 고 반박했다.

◇ 비즈니스 모델도 확립해야〓한국소프트창업자문의 김동렬 상무는 "많은 벤처기업인들이 기술개발보다는 코스닥에 등록, 자본이득을 얻는 데만 신경을 쓰다보니 기술보다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사업방식을 택한다" 고 지적했다.

국내 벤처의 사업 내용은 포털.무료 전자우편.채팅서비스 등 회원을 끌어모은 뒤 이를 바탕으로 인터넷 광고 중심의 마케팅을 하는 단순한 방식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주가가 뛰어 큰 돈을 벌었지만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지 못한 곳도 적지 않다. 그러다보니 다른 벤처기업에 투자하거나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수준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권혁기 연구위원은 "국내 벤처 열풍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수요를 창출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육성정책과 주식시장의 활성화가 맞아 떨어져 나타난 현상" 이라며 "국내 벤처 경영자들에게는 기술개발에 모든 것을 거는 기업가 정신이 부족하다" 고 지적했다.

지오인터랙티브 김병기 사장은 "벤처기업의 핵심은 기술력이다.
자본이 충분하고 마케팅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기술력이 없으면 사상누각(砂上樓閣)에 불과하다" 며 "기술개발을 위해 밤낮없이 뛰는 기업이 한국을 대표하는 벤처기업으로 부상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소프트창업자문의 강세호 박사는 "기술집약형 벤처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예비창업 단계부터 인큐베이팅(창업보육)업체의 도움을 통해 기술.마케팅.영업 등 경영의 전 과정이 관리되는 '트랙관리(Track Management)' 모델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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