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공급의 법칙 안 통하는 ‘비싼 등록금’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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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서울 광화문 KT 사옥 앞에서 7일째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며 촛불시위를 벌이던 대학생 20명이 4일 경찰에 연행되면서 등록금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대다수는 ‘비싼 등록금’을 낮춰야 한다는 점엔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비싼 등록금의 책임소재를 놓고 이견이 나오고 있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과거 정부에서 등록금 인상률이 (현 정부보다) 더 높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비싼 등록금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정도 수준에 이르렀을까.

 등록금 액수는 1980년과 2010년을 비교하면 11~12배 차이가 난다. 최근 10년간 비교하면 국립대 등록금은 93%, 사립대는 68%가량 인상됐다. 이 기간 소비자물가지수는 31% 상승했다. 등록금이 물가보다 2~3배 더 오른 것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대학 등록금이 급등하게 된 배경으로 두 차례에 걸친 자율화 조치를 지목하고 있다.

 노태우 정부 때인 89년 대학 총장이 인상 폭을 결정할 수 있게 한 사립대 등록금 자율화 조치가 시행된 이후 사립대 등록금은 150만원 안팎에서 95년 300만원대로 진입했다.

인상률은 연평균 10%를 웃돌았다. 교과부 관계자는 “당시 자율화 조치는 대학이 관치 행정에서 벗어나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80년 67만1000원이었던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96년 371만원, 34만여원이었던 국·공립대 등록금은 170만원대로 뛰어올랐다.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엔 국·공립대 등록금 자율화 조치가 도입돼 2003년부터 시행됐다. 이후 국·공립대 등록금이 300만원(2005년)대에 진입한 데 이어 2008년에는 400만원대로 올라섰다. 이 기간(2003~2008년) 사립대 등록금은 545만원에서 730만원대로 상승했다. 박거용(상명대 교수)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소장은 “군사정권 시절에는 등록금을 억제하려 했는데 문민정부로 바뀌면서 자율화 물결을 타고 등록금이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4년제 대학 숫자가 1990년대 초반 100여 개에 불과했던 것이 2000년대 190개를 넘어섰으나 등록금 인상은 계속됐다. 98년에는 전문대가 대학 명칭을 쓰게 됐고, 대학 숫자는 344개로 늘어났다. 대학 숫자가 늘어나면 등록금 가격이 떨어지는 게 시장 원리지만 국내 대학엔 통하지 않았다. 권대봉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은 “대학 수가 많아졌지만 대학에 가려는 학생도 계속 늘었기 때문에 등록금이 조정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90년 33.2%였던 대학 진학률은 97년 60.1%를 기록한 데 이어 2009년 81.9%로 늘었다. 이처럼 대학 진학 수요가 늘어나자 대학들은 교육 인프라 구축과 교수 확보 등을 명분으로 앞다퉈 등록금 인상 경쟁을 벌여왔다.

 사립대가 전체 고등교육기관의 87%에 달하는 것도 비싼 등록금의 배경이다. 대학생 10명 중 8명이 국·공립대보다 등록금이 두 배가량 비싼 사립대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사립대 등록금 의존도는 65%에 달하고 있다.

미국은 사립대 비중이 33%가량이고, 프랑스·독일 등 유럽에서는 국립대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지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국내총생산의 1%)보다 낮은 0.6%에 불과해 등록금 상승을 부채질했다.

 등록금 의존증에 빠진 사립대가 자체 부담을 기피하는 것도 문제다. 사립대 10곳 중 8곳은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으면서도 법적으로 부담해야 할 최소 법정부담금조차 법인이 전액을 내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예산 부풀리기를 통한 등록금 과다 인상 의혹을 받을 정도로 부실한 대학재정 운용도 천정부지로 등록금만 올리는 요소가 되고 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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