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발 씻어 주는 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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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 이강산 교사가 자기 반 학생의 발을 씻어 주고 있다.

부안군 행안면 고성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는 금요일 아침 자습시간이면 특별한 의식이 베풀어진다.

담임인 이강산(51) 교사가 녹차 잎 찌꺼기를 우려낸 물로 학생들의 발을 씻어 주곤 한다. 이 교사는 아이들의 발가락 사이까지 문지르면서 "우리 OO님, 기분이 좋지요"라는 식으로 정겨운 대화를 나눈다.

그는 아이들을 부를 때 이름 뒤에 반드시 '님'을 붙인다.

김은수(12)군은 "선생님이 잘 대해 주시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며 "'나도 남에게 잘 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고 말했다.

이 교사가 '아이들 받들어 모심 교육'을 시작한 것은 10년여 전이다.

"전교조 활동으로 5년 간 해직됐다 1994년 복직하면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고민했어요. 외부 투쟁에 몰두하기보다 내 교실 아이들부터 잘 가르치는 게 참교육의 첫 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교실 안에서조차 아이들이 거친 말과 욕설을 마구 하고 물건을 함부로 던지는 등 폭력이 흔한 것을 보고 '모심'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마음에서 자기 반 학생 40여명의 발을 매주 한번씩 씻어 줬다.

또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언어 순화가 필수적이라고 판단, 아이들을 부를 때는 물론 책상.걸상 등 사물에도 꼭 '님'자를 붙였다. 또 학생들에게 이를 실천하도록 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교사와 학생들, 학생들과 학생들이 교실바닥에 무릎을 끓고 서로 맞절을 하게 했다.

이 교사는 학생들이 스스로 숙제를 내고 이를 해 오는 '자치'실험도 하고 있다.

또 아이들이 자신의 성과에 대해 스스로 칭찬하고,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스스로 벌을 정해 운동장을 돌거나 유리창을 닦도록 유도했다.

이 교사는 두레(분단)를 만들어 공부시키고, 동아리 활동을 시킴으로써 '공생'의 정신을 심는 데도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이 '모심.자치.공생' 교육을 받아들이면서 교실 안에서는 왕따.폭력이 자취를 감췄다. 이지현(12)양은 "친구들이 서로 존중하게 되면서 큰 소리와 다툼이 없어지고, 스스로 알아서 계획을 짜 공부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 교사의 교실 살리기 운동이 성과를 보이면서 동료 교사 10여명도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매주 한차례 모여 사례.경험을 나누는 한편 인터넷 다음에 '부안 아이샘'이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이 교사는 "학교폭력을 경찰에 의존해 해결하려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교사.부모가 먼저 아이들을 존중해 주면 아이들이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배우고, 폭력이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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