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 “내 돈 내놔” … 박연호 재판 아수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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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부산저축은행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부산저축은행 박연호 회장 등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바른’의 서울 대치동 사무실을 항의방문했다. 경찰이 건물 진입을 제지하자 회원들이 건물 입구에 누워 항의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내 돈으로 비싼 변호사 사지 마라!” “사형시켜라!” 26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분노한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의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불법 대출 등 비리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연호(61·사진) 부산저축은행 그룹 회장 등 21명에 대한 첫 재판 준비기일에서다. 하늘색 미결수복을 입은 박 회장 등이 법정에 들어서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피해자들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쏟아냈다. 법정에 배치된 30여 명의 공익요원 등이 제지해도 소용없었다. 형사24부 염기창 재판장이 진행 중 다섯 차례나 “재판 중 소란을 피우면 법정에서 내보내거나 과태료 부과 등의 처벌을 할 수 있다”고 경고해야 했다.

 이날 박 회장 측 변호인은 저축은행 자금 44억5000만원을 횡령한 혐의만 인정하고 나머지 혐의는 모두 부인했다. 그는 특수목적법인(SPC)에 4조6000억원 상당의 신용을 공여하고 1조3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하거나 이를 근거로 1000억원 상당을 부정거래한 혐의, 3600억원이 넘는 부당대출로 손해를 끼친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김양(59) 부회장과 김민영(65) 부산저축은행장의 변호인은 “혐의를 대체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날 법정에 출석한 변호인단 중 PD수첩 사건 항소심 재판장을 지낸 이상훈 변호사, 전교조·전공노 시국선언 사건 재판장이던 정한익 변호사 등 판사 출신 변호사가 여럿 눈에 띄었다. 재판이 끝난 뒤 피해자들이 “비싼 변호사 비용이 다 내 돈이다”며 야유를 보내자 변호인들은 재판장 출입문을 통해 법정을 빠져나갔다. 피해자들은 이날 박 회장과 김 부회장, 김 행장, 강성우(60) 감사 등 핵심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바른의 사무실에 찾아가 항의 시위를 벌였다. 바른 측은 “변호사 4명의 사임계를 곧 재판부에 제출하고 변호를 중단할 예정”이라며 “애초에 기소단계까지만 변호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재판이 끝난 뒤에도 법정을 떠나지 않았다. 박성자(65)씨는 “25년 동안 파출부 생활로 모은 내 돈 1400만원 내놓아라”며 오열했다. 일부는 탈진해 바닥에 드러누워 법원 간호사까지 달려왔다. 법정 관리 책임자가 “어머님 아버님 아픈 마음 잘 압니다. 하지만 재판은 이제 시작입니다”고 안내방송을 거듭했다. 그제야 피해자들은 울면서 20여 분 만에 법정을 나섰다.

글=구희령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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