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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복원 '차관급 접촉'이 기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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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차관급 실무 접촉이 열린다. 이번 회담은 북한이 영변 원자로 사용후 핵연료봉 인출을 발표(11일)한 직후 열리는 것이어서 국내외에서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사안의 성격상 이번 회담에서 북핵 문제의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무리인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번 회담을 남북관계 복원의 기폭제로 최대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올 초 민족공조를 강력히 주장했다. 6.15 공동선언 5주년 행사도 눈앞에 다가왔다. 경색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민간 교류의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북한 내부에도 부담이 됐을 것이다. 북한의 경제 상황도 더욱 악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올해 먹는 문제 해결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의 비료 지원은 절실한 문제다. 우리 정부의 '선(先) 당국자회담, 후(後) 비료 지원'이란 원칙에 따라 북한 당국은 더 이상 남북 접촉을 늦출 수 없는 실정이다. 북한의 상황이 어려운 만큼 우리 정부는 이번 기회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차관급 실무회담이 열리는 이 시점에서 그동안 남북관계 복원에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남북관계 자체의 문제다. 북한이 핵 문제에 체제의 명운을 건 이상 남북관계는 북핵 문제의 하부영역으로 다뤄져 왔다. 이런 상황에서 체제 단속 차원에서도 남북관계 단절이 불가피했을 것이란 전망이 가능하다. 북한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당을 비롯, 사회 전반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참여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한 것에 적잖이 섭섭해했다는 후문이다. '뇌물 수수죄'에 걸린 북한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에 대한 진지한 고려가 있었는지는 자문해 볼 일이다. 특검은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과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수행하는데 족쇄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 중국과의 경제협력 강화 속에서 남북관계의 효용가치를 재검토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흡수 통일의 우려가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은 남한보다 중국과의 경제협력 강화가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듯하다. 절박한 입장에서 남한과 중국을 상호 경쟁시켜 양측으로부터 경제적 실리를 취하려는 입장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양 남쪽에선 남한, 북쪽에선 중국의 투자를 유인해 경제 회생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북한 경제는 중국 경제의 영향력 아래로 급속히 편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지방뿐 아니라 평양까지도 중국 상품이 진열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한다. 통일부 발표에 따르면 1월과 2월 북한과 중국의 교역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대중 수출은 4940만 달러로 29.2% 늘었고, 수입은 1억753만 달러로 60.2%나 증가했다. 수입 증가세가 두드러진 것이다. 특히 3월 박봉주 총리 방중 시 체결된 투자보장 협정은 북한 경제에 큰 활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북한 경제의 중국 편입이다. 투자보장 협정이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고착시키고 중.장기적으로 경제 종속 현상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 고착될 때 우리도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당장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이 약화될 것이며, 북.중 간 긴밀한 경제협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남북 경협은 성과를 거두는 데 한계를 보일 것이다. 우리가 한반도 문제와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데에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려스러운 일이지만 향후 통일 과정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방어하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우리 정부가 전제조건 없이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한 역시 장기적 대안 없이 중국과의 거래에 매달려 굶주림을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민족공조를 통해 남북관계를 소중히 가꿔 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