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원 시장놓고 2백40여개 창투사·조합 각축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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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벤처산업처럼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벤처산업이 본격 발돋움하기 시작한 것은 1년도 채 안된다. 이 짧은 기간에 국내 벤처산업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급성장세를 탔다.

그 배경은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에 맞물려 코스닥시장이 공전의 호황을 보인 데서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코스닥 열차에 타기만 하면 부를 거머쥐는 일이 어렵지 않게 된 현실이 벤처창업열기를 북돋웠다. 지금 그 열기는 벤처대열에 끼지 못하면 낙오자로 느껴질 만큼 ‘열병’으로 변하고 있다.

현재 중소기업청에 등록된 벤처기업수는 5천여개. 그러나 지금과 같은 창업 붐이 상당기간 더 이어질 것이 확실시돼 앞으로 이 숫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이와 함께 벤처기업의 자금줄인 창업투자회사등 벤처캐피털시장도 급팽창했다. 올 1월 현재 중기청에 등록된 창투사는 모두 87개, 벤처투자조합만도 1백49개에 이른다. 96년 대비 창투사와 투자조합은 각각 1.5배, 3배에 달하는 증가세다.

중기청에 따르면 벤처투자시장 규모는 대략 3조원대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 경쟁적으로 발표되고 있는 투자계획들이 실행될 경우 이 규모는 앞으로 엄청나게 커질 게 분명하다.

그러나 벤처는 말 그대로 모험사업이다. 투자위험이 매우 크다는 얘기다. 지금은 그 비율이 많이 높아지긴 했지만 통상 10개 정도 투자할 때 2~3개 정도만 건져도 성공이라고 할 정도로 이 세계는 지뢰밭 투성이다.

‘효자벤처’를 품안에 넣기 위한 벤처캐피털간의 경쟁은 그만큼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명성있는 한 창투사가 모 기업에 투자한다는 소문이 나면, 군소창투사들은 서로 투자하겠다고 우루루 따라간다. ‘떼로 몰려다니는 쇼핑’하는 양상도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일부 창투사들의 경우에는 파트너로서 투자기업의 성장을 돕는다는 측면은 무시한 채 오로지 투자수익 확보에만 눈독을 들여 몸값에 거품을 불어넣기도 한다. 일본 소프트방크의 손정의 사장에 대항해 국내 토종자본이 1조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설립하는 계획은 이러한 거품현상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 장비업체 C사.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급속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회사다. 최근 50억원 증자도 했다. 최근 모 창업투자회사에서 이 회사에 투자하겠다고 찾아왔다. 창투사 직원은 대뜸 프리미엄 문제부터 꺼냈다. 지분조정은 어떻게 할지를 놓고 한참을 물었다.

“회사를 어떻게 성장시켜 나갈지는 전혀 관심 밖의 일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술력에는 별 관심이 없었어요. 오로지 투자수익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이 회사의 사장 K씨가 털어놓은 창투사의 투자 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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