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이집트 대학생들의 ‘한국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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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경제부문 기자

지난주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 퇴진 100일을 맞아 이집트를 찾았다. ‘혁명의 도시’ 카이로 시내에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였다. ‘엘란트라’ ‘베르나’ ‘세라토’ 등 눈에 익은 한국 브랜드가 많았기 때문이다. 노철(51) KOTRA 카이로 무역관장은 “현대차는 이집트 신차 시장의 40%를 차지하는 ‘국민차’”라고 소개했다.

 한국의 흔적은 시내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공항과 일급 호텔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LG전자의 TV였고, 젊은이들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이었다.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 “코리아”라고 답하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김현수(40) 삼성전자 카이로지사 차장은 “젊은 층에 이미지가 좋아 매출이 꾸준히 오르는 추세”라며 “올 초부터 TV 광고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집트 젊은이들은 한류에 열광하고 있었다. 수년 전부터 국영 TV를 통해 방송된 ‘가을동화’ ‘겨울연가’ ‘대장금’ 등 한국 드라마 덕분이다. 2005년에는 아랍 국가 최초로 아인샴스대에 한국어과가 개설됐다. 한국어과에 재학 중인 예스민 사비르(20·대학생)는 “인터넷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고 가요를 듣는 데 익숙하다”며 “한국 문화를 배우고 싶어 한국어과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50년 전엔 아니었다. 1961년 이집트의 1인당 국민소득은 151달러. 한국은 91달러였다. 50년이 지나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벽을 넘었지만, 이집트는 국민의 40%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간다. 이 차이를 가른 것은 한국 비즈니스맨의 저력이다.

현지 자동차 수입회사인 SMG의 모리스 가타스(67) 대표는 “여러 나라 비즈니스맨과 거래하지만 한국인처럼 독하게 일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한국인에게서 비즈니스 정신을 배울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이집트 현대차 공장에서 일하는 나샤드 비쇼이(24)는 “이집트에서 가장 큰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게 뿌듯하다”고 했다.

한국은 머나먼 땅 ‘파라오의 나라’ 이집트가 닮고자 하는 롤모델이 돼 있었다. 한국 비즈니스맨들은 자랑할 자격이 충분해 보였다. ‘나는 한국인이다’라고.

김기환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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