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서 떴다, 스코틀랜드 시골 소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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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에서 주연한 제임스 맥어보이. “피아노도 칠 수 있고, 다이빙도 잘 하는데 영화에서는 대역을 써서 아쉬웠다”고 했다.


부모님이 이혼한 후 할머니 손에 컸다. 가톨릭 학교에 다니며 동네 빵집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소년이었다. 배우 제임스 맥어보이(James McAvoy·32)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외곽에서 “배우가 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자랐다.

 “1995년 학교에서 오디션이 열렸어요. 아역 배우를 찾는 거였죠. ‘우는 연기를 해보라’는 테스트를 받았죠. 무작정 눈을 크게 뜨고 바보 같이 눈물을 짜냈던 기억이 나요.”

 맥어보이는 이때 발탁돼 소규모 영화에 출연했다. 이듬해 스코틀랜드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해 연기를 공부했다. “장래 희망이라곤 없었는데 연기를 하면서 제 미래를 조금 명확히 보게 된 거죠.”

 그는 현재 ‘할리우드 A 리스트’에 올라있는 영국 배우다. 2000년 시작한 영화 ‘엑스맨’ 시리즈의 다섯 번째 주연으로 낙점됐다. 다음 달 2일 개봉하는 영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돌연변이를 지휘해 세상을 구하는 ‘자비에 교수’의 젊은 시절 역을 맡았다.

 22일 영국 런던에서 만난 맥어보이는 “스코틀랜드 시골 마을에서 자라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연기하는 내가 문득 신기할 때가 있다”라고 말했다. TV 시리즈물과 작은 영화에 출연하던 그는 2007년 영화 ‘비커밍 제인’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작가 제인 오스틴(앤 해서웨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랑스럽고 나쁜’ 남자 역할이었다. 로맨틱한 영국 남성은 그에게 적절한 역할이었다. 예민하면서도 무심한 듯한 특유의 분위기 덕이다. 같은 해 ‘어톤먼트’에서 한 여인을 향한 사랑을 절절히 보여주는 역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따라서 ‘수퍼 히어로 영화’에 등장한 맥어보이는 낯설다.

 “영화를 고르는 기준? 내가 만족할 수 있는가의 문제라 생각해요. 이번 영화에도 ‘악’에 대한 신선한 시각이 있어 끌렸죠. 선과 악의 단순 대립보다 공존을 보여주는 것이 즐거웠어요.”

 동료 배우들은 그를 두고 ‘카메라 앞에서 놀랄 정도로 변신하는 프로’라 칭했다. 이번 영화에서 ‘털복숭이 괴수’ 역할을 맡은 배우 니콜라스 홀트는 “촬영장에서 만난 맥어보이는 긴장을 푼 채 일을 즐긴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일단 카메라가 돌아가면 완전히 바뀌고 놀랄 만큼 집중한다”고 말했다. 만화 『엑스맨』을 영화로 각색한 제작자 브라이언 싱어는 “스피드와 서정성을 동시에 갖춰 할리우드가 필요로 하는 배우”라고 호평했다.

 그는 미국 시장에 안전하게 착륙한 영국 배우다. “이번 영화에서 미국의 명배우 케빈 베이컨과 함께 연기했죠. 많은 것을 배웠어요. 언젠가 ‘맥베스’처럼 영국색 짙은 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런던=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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