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정색하고 들여다보다, 이 시대 아이돌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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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이돌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보면 한국 사회의 다양한 이슈가 읽힌다. 사진은 인기 정상의 걸그룹 ‘소녀시대’. [중앙포토]

 아이돌
이동연 엮음, 이매진
407쪽, 2만원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아이돌’의 이름은 늘 어떤 ‘오해’의 이름이었다. 어떤 이들은 아이돌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질 낮은 음악으로 한국 음악계를 망친다고 펄펄 뛰었다.

 정반대의 목소리도 있었다. 과도한 민족주의로 무장한 이들은 아이돌을 ‘한국 문화 전도사’라고 치켜세웠다. 이런 양극단의 목소리는 숱한 오해를 낳았다. 아이돌에 대한 진지한 분석 대신, 표면적인 현상만을 보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여년 간 아이돌에 대한 말은 넘쳐났지만, 아이돌을 냉철하게 이해하려 들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이 책은 그 첫 시도다. 부제가 일러주듯 국내 최초의 ‘아이돌 문화 보고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를 비롯해 13명의 문화연구가들이 아이돌에 대한 학술적 분석을 시도했다. 아이돌 문화에 대한 정의부터 출발해 이데올로기 분석에 이르기까지 문화 연구의 다양한 방법론이 펼쳐진다.

 책은 크게 세 갈래다. 1부에선 아이돌 문화의 함의를 살핀다. 문화평론가 문강형준씨는 한국 사회에서 아이돌이 소비되는 방식을 서술했다. 문강씨는 아이돌을 ‘인간 자본(human capital)’이란 개념으로 풀이한다. 그에 따르면, 아이돌은 “자신의 역량을 갈고 닦음으로써 성장하는 1인기업, 즉 자본가”이며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업그레이드 되길 원하는 인간 자본”이다. 그래서 아이돌은 음악에 ‘올인’하지 않는다. 대신 예능·드라마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힌다. ‘멀티 엔터네이너’가 될수록 경제적 리스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2부는 아이돌 ‘음악’에 대한 학술적 논의다. 한국 아이돌 음악의 지형도를 역사적 맥락에 따라 펼친 대목이 특히 흥미롭다. 대중음악평론가 차우진·최지선씨는 한국 아이돌의 역사를 1세대와 2세대로 나눴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아이돌의 역사는 1996년 데뷔한 H.O.T로부터 시작된다. 이른바 ‘1세대 아이돌’의 시대는 H.O.T·젝스키스 등 보이그룹과 핑클·SES 등 걸그룹이 양분했다. 이 시기엔 대형 기획사와 팬클럽 시스템이 정착됐지만, 디지털 시장에 대한 준비는 모자랐다.

 2004년 데뷔한 동방신기는 ‘2세대 아이돌’의 선두다. 이 시기엔 ‘디지털 음원 선공개→디지털 싱글→정규앨범’ 등으로 이어지는 디지털 음악 시스템이 구축됐다. 또 2세대 아이돌의 경우 음악뿐만 아니라, 예능·드라마·영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멀티 엔터테이너로 자리잡았다. 또 하나의 특징은 걸그룹 편중 현상이다. 2007년 원더걸스의 ‘텔미’에서 시작된 걸그룹 열풍은 소녀시대·카라 등으로 이어졌고, 최근엔 신한류를 주도하는 핵심으로 떠올랐다.

 3부에선 주로 2세대 아이돌에 초점을 맞춰 아이돌 문화로부터 파생된 각종 현상을 분석한다.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와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은 걸그룹 열풍과 삼촌팬에 주목했다. 김 교수는 ‘삼촌팬(걸그룹을 좋아하는 30~40대 남성팬)’이란 말이 걸그룹이 지닌 성애적 이미지를 흐릿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삼촌과 소녀라는 가족주의적 설정 자체가 걸그룹의 섹슈얼리티(sexuality) 전략에 대한 비판을 차단한다는 지적이다.

 반면 김 연구원은 삼촌팬 현상을 성적 욕망으로 몰아가는 시각에 맞선다. ‘삼촌’이란 말이 가족적 친밀성을 더하고, 권위적인 남성성으로부터 달아나게끔 한다고 분석한다. “친밀성을 통해 아이돌 스타와 관계를 맺고 탈권위주의적인 남성성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이들이 우리시대 삼촌팬”이라는 얘기다.

 책은 아이돌 음악을 듣듯 쉬 읽히진 않는다. 난삽한 학술용어와 개념이 줄지어 나오는 탓이다. 때문에 아이돌과 관련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책을 잡지 않는 편이 낫다. 그러나 우리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아이돌’이란 문화 세력을 진지하게 따져볼 생각이라면, 이 책은 작지 않은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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