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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반갑다, 이동훈” 13세 프로 등장에 박수치는 이유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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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전문가’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는 최소한의 나이는 몇 살쯤일까. 바둑은 왜 한 살이라도 빨리 프로가 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길까. 피겨의 김연아 선수는 군포 수리고 시절 세계에 이름을 떨쳤고, 루마니아 체조 요정 코마네치는 15세 때 이미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뇌 게임인 바둑도 이에 못지않게 빠르다. 오늘날 이름이 알려진 초일류 기사들은 거의 모두 초등학교 시절 프로가 됐다. 조훈현 9단은 9세7개월 때 프로가 돼 세계 최연소 기록을 갖고 있고 조치훈 9단, 이창호 9단은 11세, 이세돌 9단과 최철한 9단은 12세, 중국의 구리 9단과 쿵제 9단은 12세, 천야오예 9단과 셰허 7단은 11세다. 중국에도 1998년생인 양딩신 2단이 3년 전에 세운 9세9개월이란 놀라운 기록이 있다.

 바둑 천재들은 이처럼 일찍 프로가 된다. 하지만 근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 입단 연령은 계속 높아졌다. 천재의 맥을 잇는 박정환 9단이 13세에 프로가 된 것도 어언 5년 전. 최근엔 15세의 나현 초단이 가장 빨랐고 평균 나이는 한계선인 18세에 육박했다.

바둑계는 고민에 빠졌다. 한국 바둑을 지탱해 온 천재의 맥이 끊어진 것일까. 높은 진입장벽에 따른 과도한 경쟁, 입단 위주의 훈련 방식이 천재성을 말살하고 있는 것일까. 이래서는 한국 바둑의 미래가 없다는 반성 아래 만 15세 미만만이 출전할 수 있는 영재 입단대회가 신설되기도 했다(내년부터 시행).



 지난 17일 한국기원 연구생 입단대회에서 이동훈 초단(충암중1)이 만 13세3개월의 나이로 입단에 성공했다. 바둑계는 전통적으로 어린 천재들을 놓고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입단(入段)은 입문(入門)에 불과한데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어린 소년을 과도하게 칭찬하는 것은 장래를 망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가뭄 속의 단비처럼 등장한 이동훈이란 존재에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천재의 맥이 살아 있었다는 것, 현행 제도 아래에서도 천재 발굴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동훈은 전주 출신으로 6세 때 바둑을 배웠고 9세 때 서울에 올라와 연구생이 됐다. 지난해 대한생명배 세계어린이 국수전에서 우승했다. 같은 전주 출신인 이창호 9단을 가장 존경한다는 이동훈은 계산이 정확하고 후반이 매우 강한 점도 이창호를 닮았다.

 이동훈이 한국기원 253명 프로기사 중 최연소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보다 어린 기사들은 이전에도 숱하게 많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빠른 입단’이 ‘창의성’과 ‘상상력’을 살려준다는 데 있다. 이동훈은 이제부터 승부 위주의 입단 지옥에서 해방되어 큰 물에서 고수들과 마음껏 어울릴 수 있다, 한국바둑 천재 계보를 이어갈 것이란 기대를 품게 만든다.

그러나 입단연령엔 예외도 있다. 서봉수 9단과 유창혁 9단은 만 18세에 프로가 됐으나 대성했다. 바둑사의 미스터리에 속할 만큼 특이한 케이스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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