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L] 세인트루이스 램스에게 아내 잃은 기구한 사내 스토리

중앙일보

입력

세인트루이스 램스가 NFL 만년하위를 벗어나 수퍼보울에 진출하면서 시 전체가 축제의 도가니에 빠진 와중에도 홀로 텅빈 방에서 가슴치며 눈물을 훔치는 중년남성이 있다.

LA 타임스는 26일 스포츠면 커버스토리로 세인트루이스 토박이면서도 한번의 악연으로 평생 램스를 미워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한 남성의 기구한 사연을 소개했다.

98년 10월19일 자정쯤 빌 거트와일러(52)는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에 잠이 깼다.“콘서트장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가 안온다”는 아들, 마이크의 전화였다.

깜짝 놀라 아내를 찾아나선 거트와일러를 맞아준 것은 경찰차의 반짝이는 경광등과 요란한 사이렌 소리, 그리고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부서진 아내, 수의 선더버드 승용차뿐.

그의 아내는 램스의 라인백커, 레너드 리틀이 술에 만취해 몰던 차량에 들이받혀 현장에서 숨졌다.

사고 당시 리틀의 알콜 혈중농도는 법정허용치의 거의 두배인 0.19로 그는 빨간신호를 무시하고 그대로 수의 차로 돌진한 것이다.

20년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7살난 어린 딸을 교통사고로 잃고 동생마저 보냈는데 이번에는 아내마저 또다시 교통사고로 그의 곁을 떠났으니 거트와일러는 얼마나 기막혔을까.

그러나 거트와일러가 1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램스와 리틀을 용서못하는 것은 단순히 31년이나 해로한 아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 아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하기만 했던 한 가정의 사랑하는 아내이자 소중한 엄마의 생명을 앗아 간 리틀에게 90일 징역에 사회봉사 1,000시간, 그리고 4년의 보호관찰이란 가벼운 형이 내려진 것이다. 그나마 리틀이 형량도 제대로 채우지 않고 풋볼필드를 누비며 뭇사람들에게 박수갈채를 받고 있는 것은 거트와일러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를 더욱 분노케 한 것은 사고 이후 리틀은 물론 램스 구단으로부터 아무런 해명이나 사과 한마디 못듣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사랑으로 선수들을 이끌어 만년하위 램스를 수퍼보울에 진출시켜 명장이 됐다는 딕 버마일 감독은 “레너드는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어야 할 것”이라고 리틀만 두둔하는 발언으로 다시 한번 거트와일러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기고 세월이 흐를수록 가슴 속의 앙금만 쌓인 그가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 리틀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나 사과가 아니다. 그저 리틀이 다른 구단으로 트레이드 되는 것 뿐이다.

그에게 있어서 리틀과 세인트루이스의 한 하늘 아래 존재한다는 사실이 치유할 수 없는 아픔을 계속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램스구단은 아직도 아무런 사과나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
다.
램스가 수퍼보울에서 승리하더라도 거트와일러의 상처를 끝내 무시한다면 ‘진정한 챔피언’이라 불리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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