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형석의 내 맘대로 베스트 7] 칸영화제 논란의 역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23면

영화 ‘희생’


전 세계 영화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칸영화제. 올해로 64회를 맞이한 영화제도 중반을 넘어 열기를 더하고 있다. 강한 개성의 영화들이 모이는 만큼 그 ‘논란의 역사’도 만만치 않았던 듯. 가장 술렁거렸던 사례를 모았다.

김형석 영화 칼럼니스트

7 신설된 예술공헌상

1981년 칸영화제. 안제이 바이다의 ‘철의 인간’이 대세인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색다른 고민에 빠졌다. 놀라운 중세극인 ‘엑스칼리버’를 어떻게 대접할 것인가. 그들은 고심 끝에 ‘예술공헌상’을 신설했다.

6 이브 몽탕의 결단

87년. 영화제가 끝나가도 황금종려상을 줄 만한 영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심사위원장인 이브 몽탕은 지친 나머지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영화를 좋아한다”며 모리스 피알라의 ‘사탄의 태양 아래서’에 트로피를 건넸다. 시상식장 여기저기서 고함 소리가 들리자, 피알라 감독은 주먹을 치켜들며 “나도 당신들이 마음에 안 들어!”라고 응수했다.

5 앙겔로풀로스의 섭섭함

95년 칸은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율리시즈의 시선’이 대세처럼 보였지만 에밀 쿠스트리차의 ‘언더그라운드’가 승자였다. 심사위원대상으로 만족해야 했던 앙겔로풀로스는 “황금종려상 수상 소감 외에는 준비한 것이 없다”며 시상식 단상을 내려왔다. 3년 후 그는 ‘영원과 하루’로 논란 속에 황금종려상을 수상한다.

4 미완성 수상작

‘양철북’과 ‘지옥의 묵시록’이 황금종려상을 나눠가졌던 79년. 심사위원장인 프랑수아즈 사강은 원래는 ‘양철북’의 단독 수상이었지만 영화제 집행부의 압력으로, 미완성 상태였던 ‘지옥의 묵시록’에도 황금종려상을 주었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그래서일까? 코폴라는 22년 후인 2001년 칸영화제에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를 들고 돌아왔다.

3 벤더스의 입장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가 황금종려상을 탔지만 89년 칸의 화제작은 스파이크 리의 ‘똑바로 살아라’였다. 이 영화는 단 하나의 트로피도 가져가지 못했고 스파이크 리는 분노의 독설을 쏟아냈지만, 심사위원장인 빔 벤더스는 단호했다. “리 감독은 겁쟁이다. 그는 흑인과 백인 중 어느 편에도 가담할 용기가 없다.”

2 브레송의 분노

83년 칸.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노스탤지어’와 로베르 브레송의 ‘돈’ 중 한 편이 황금종려상을 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세르게이 본다추르크는 소련 공산당의 배신자인 타르콥스키가 황금종려상을 타면 외교 문제를 일으키겠다고 위협했다. 결과는 이마무라 쇼헤이의 ‘나라야마 부시코’의 황금종려상 수상. 타르콥스키와 브레송은 감독상을 나눠 가졌고, 브레송은 사진기자들 앞에서 수상 증서를 땅에 던져버렸다.

1 타르콥스키의 유작

칸영화제 사상 가장 큰 논란에 휩싸였던 황금종려상은 86년의 ‘미션’이었다. 사람들은 타르콥스키의 ‘희생’이 ‘미션’에 밀린 것에 유감을 표하며 ‘미션’의 제작자 데이비드 퍼트냄이 펼친 로비의 결과라고 수군거렸다. 그해 겨울, 타르콥스키는 세상을 떠났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