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캐주얼+스포츠>포츠 룩’ 시장 창조 …레드오션서 블루오션 찾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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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린(吉林)시에 있는 EXR 매장. EXR은 소득 상위 10% 고객을 집중 공략하는 전략으로 중국 시장에서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심었다. [EXR코리아 제공]

패션업계는 레드오션(red ocean) 시장이다.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이 경쟁하고 매년 100개 넘는 신생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포화 시장이다. 트렌드는 빠르게 변하고, 고객의 취향도 종잡기 어렵다. 신생 브랜드가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10년간 빠르게 성장해 성공적으로 해외에 진출한 기업이 있다. EXR코리아(대표 민복기)다. “우리가 시장을 창출했다. 그러니까 당연히 우리가 1등이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EXR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활동성+기능성+패션=캐포츠 룩
2000년대 들어 주5일제 근무가 정착되고 웰빙(well-being)이 주목받으면서 라이프스타일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주말이면 집에 콕 박혀 쉬기만 하던 사람들이 야외에서 여가 활동을 즐길 시간을 갖게 됐다. 쉬면서 즐기는, 실내·외 활동이 어우러진 주말이 생긴 것이다. 자연스럽게 의생활도 달라졌다. 활동성과 기능성을 갖추고, 패션으로도 손색없는 주말용 옷에 대한 니즈가 생겨났다. 나이키코리아·필라코리아 등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에서 근무한 민복기 대표는 그 변화를 포착했다. 새로운 시장을 열면서 EXR이 탄생했다. 포털사이트의 오픈사전에도 실린 ‘캐포츠(caports)’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게 EXR이다. 캐주얼(casual) 의류의 편안한 활동성과 스포츠(sports) 의류의 기능성을 결합한 ‘캐포츠 룩’ 시장이 만들어졌다.

소비자가 원하는 새로운 것, 다른 기업과 차별화한 것으로 승부수를 띄운 게 EXR의 첫 번째 성공 비결이다.


매니어 고객이 최대 자산
시장을 만든 뒤 EXR은 빠르게 덩치를 키웠고 확고한 브랜드 정체성을 세웠다. 또 고급 브랜드란 이미지를 심기 위해 ‘노 세일(No Sale)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했다. 2001년 1월 갤러리아 백화점에 첫 매장을 열고 100호점 오픈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년7개월. 덕분에 론칭 3년 만에 매출 1300억원 돌파, 주요 백화점에서 스포츠웨어 부문 매출 1위를 달성하는 성과를 이뤘다. “기업에는 체격과 체력이 동시에 중요한데, 우린 짧은 시간 안에 일단 체격을 키우고 근력을 키웠다”는 민 대표의 전략이 적중한 셈이다. 또 EXR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진정한 경쟁력을 가지려면 ‘이 옷은 EXR’이라고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는 정체성 확립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디자인 부서뿐 아니라 연구개발(R&D), 생산, 마케팅 등 전 사업 영역이 ‘디자인 중심 경영’에 나섰다. 광고·홈페이지·매장 인테리어도 의류 디자인과 일관된 이미지를 표현하게 했다.

EXR은 처음부터 고가 전략을 채택했다. 인지도 없는 중소기업 브랜드로서는 상당한 모험이었다. 대신 프리미엄 브랜드에 걸맞은 품질과 고객서비스를 보장했다. 20년 이상 경력을 갖춘 업체와 거래하고 4단계의 검사를 거쳐 제품의 품질을 높였다. 원가 때문에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회사들과는 달리 신발은 80% 이상을 신발 생산의 본산인 부산에서 만든다. 서비스도 체계화했다. 20시간 이내 고객 요구에 답하고, 자체 수선센터를 통해 당일 수선이 가능토록 했다.

EXR 고객 서비스의 또 다른 핵심은 철저한 매니어 고객 관리다. 시즌별로 누적 구매액수, 구매 빈도 등에 따라 VIP 고객을 선정해 전담 직원을 두고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회사는 EXR의 팬이 된 고객들을 중심으로 프로슈머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이들에게는 캠프 등 각종 이벤트 기회를 제공했다. 2010년 현재 이런 매니어 고객의 숫자는 약 2만5000명. 브랜드의 팬클럽을 자처하면서 알아서 입소문을 내는 매니어 고객들은 EXR의 가장 큰 마케팅 자산이 됐다.

최종 목표는 글로벌 시장
중국에서 EXR 청바지는 세계적인 리바이스 청바지보다 두 배 정도 비싼데도 잘 팔린다. 브랜드 제품을 선호하는 중국의 부자들에게 ‘고급 브랜드’로 각인됐기 때문이다. EXR은 2004년 중국에 진출했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했다. 중국 상위 10%의 계층을 타깃으로 삼았다. 품질에 자신이 있는 만큼 가격도 고가로 책정했다. 한류 열풍과 공격적인 마케팅 덕에 브랜드는 금세 젊은이들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must have item)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에 현재 11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 시장 매출은 500억원 선. 중국 진출 이후 매출이 해마다 두 배로 늘어난 결과다.

2005년 진출한 일본 시장에서는 좀 다른 전략을 썼다. 이미 우리보다 앞선 패션 강국이기 때문에 일본인의 매니어적 기질을 십분 활용했다. 한류 스타 류시원을 내세운 마케팅이다. 레이싱 관련 제품을 취급하는 갤러리를 열고, 류시원이 감독으로 있는 프로 레이싱팀과 계약을 했다. 또 그가 디자인한 제품을 내놓아 고객들의 인기를 얻었다.

민 대표는 “힘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 패션산업의 글로벌 리더가 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며 세계적인 기업과 손잡았다.

EXR브랜드가 세계시장으로 나아가는데 이들의 시스템과 세계화 노하우가 도움이되리라 본 것이다. 2005년 미국의 ‘컨버스(Converse)’, 2008년엔 이탈리아의 스포츠 브랜드 ‘카파(KAPPA)’와 라이선싱 계약을 했다. 컨버스는 지난해 480만 족을 판매해 약 210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카파도 87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특히 카파는 2000년대 초 국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으나 ‘짝퉁’이 범람하면서 이미지가 추락한 브랜드지만 민 대표가 재정비한 후 올해 매출 1500억원대를 기대할 정도로 성장했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던 1기, 글로벌 시장 진출에 나선 2기를 지나 EXR은 지금 세계적인 브랜드로 도약하는 3기에 접어들었다. “회사의 철학이 진보(progressive)다. 패션 회사에서 진보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는 민 대표의 비전은 브랜드 이름에 그대로 담겨 있다. 진화(Evolution)와 혁명(Revolution)을 결합한(X) 것이 바로 EXR인 것이다.

정리=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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