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식민 통치 위해 명랑이란 감정을 이용했던 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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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소래섭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96쪽, 1만3800원

1935년 9월, 서울 청계천에서 채소를 씻던 주민 40여 명이 경성부 동대문 경찰서에 검거됐다. 이듬해 3월 경성부 사회과에서는 거리 노숙자 227명을 잡아 시설에 수용하고 귀향시켰다. 경성이 도시로 성장하면서 위생·치안 등의 문제가 생기자 총독부가 추진한 ‘경성 명랑화’ 프로젝트였다.

 명랑이란 말은 유쾌하고 발랄함이란 뜻이 아니었던가. 책은 이런 의문에서 시작됐다. 명랑이라면 ‘명랑만화’ ‘명랑운동회’를 먼저 기억하는 지은이는 1930년대에 쓰인 명랑의 의미가 수상했다고 한다. 당시 신문·잡지 등 자료를 뒤졌더니 명랑이란 단어에 식민지 조선, 근대 자본주의가 싹트던 30년대의 현실이 고스란히 압축돼 있더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근대에 새롭게 강조된 감정 ‘명랑’을 키워드로 한국의 근대가 형성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렸다.

 책에 따르면 30년대 명랑에서 엿보이는 것은 ‘감정정치’와 ‘감정 자본주의’의 흔적이다. 명랑화의 원조는 조선총독부였다. 30년대 이전까지 한국에서는 주로 날씨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지만, 식민지 기간을 거치며 밝은 성격이나 감정 혹은 맑고 투명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다.

 모던 걸이 등장하면서 ‘명랑’을 연출하는 감정노동자들이 급격히 증가했다. 데파트 걸(백화점 여점원), 엘리베이터 걸, 가솔린 걸(여성 주유원), 빌리어드 걸(당구장에서 함께 게임 하거나 점수를 하는 여성) 등은 명랑이라는 근대적 감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지은이는 에필로그에서 30년대의 명랑을 통해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자고 제안한다. ‘명랑화’의 이름이 ‘행복화’로 바뀌었을 뿐 본질은 달라진 것이 없단다. 책은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김진송 지음, 현실문화연구·2002) 등 꾸준히 쏟아져 나오고 있는 근대 미시사 연구의 맥을 잇는다. 과거 역사의 풍경에서 개인의 감정까지 읽어낸 지은이의 시선을 따라 신문 만평을 세세하게 들여다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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