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주워온 고양이면 어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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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힘든 때'
바바라 슈크 하젠 지음, 트리나 샤르트 하이만 그림
이선오 옮김, 미래M&B, 32쪽, 8500원

'휘파람 할아버지'
울프 스타르크 지음, 안나 회그룬드 그림
최선경 옮김, 비룡소, 52쪽, 7500원

강아지를 사달라는 '나'의 요구를 엄마는 "바쁘다"며, 아빠는 "지금은 힘든 때라서 그렇다"며 들어주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아침으로 작은 상자에 든 시리얼 대신 항상 양 많고 값싼 '왕푸짐표' 시리얼을 먹는 것도, 지난 여름 바닷가 대신 공원의 수영장에 놀러간 것도 우리 집 살림살이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림책 '힘든 때'는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을 위한 그림책답지 않게 세상의 그늘진 구석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어느날 환한 대낮에 아빠가 직장에서 돌아온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단다. 알고 보니 아빠가 잃어버린 것은 직장이었다. 하지만 그뿐, 책은 아빠.엄마의 속마음이나 나의 기분 등을 전하지는 않는다. 아이의 눈에 비친 가정사를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그릴 뿐이다. 추측할 수 없던 엄마.아빠의 속내가 환하게 드러나는 것은 사주지 않는 강아지 대신, 내가 길에서 주운 고양이를 집으로 가지고 들어가면서다. 아빠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자 엄마도 울음을 터뜨린다. 이야기는 내가 고양이를 강아지로 부르기로 하고, 고양이 '강아지'의 좋은 점들을 칭찬하는 것으로 끝난다. 자세한 설명 없이 덤덤하게 '사실'만으로 이어가는 절제된 이야기가 묘한 울림을 자아낸다. 색채 없는, 연필 그림도 그런 책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4~8세용.

'휘파람 할아버지'도 아이의 눈에 비친 사건들을 '훈수 없이' 단순 중계할 뿐이다. 에피소드는 흥미롭다. 외할아버지가 있는 우페를 부러워하던 베라가 어느날 우페와 함께 양로원을 찾아 아무 연고도 없는 할아버지에게 자신을 외손자라고 소개한 후 마침내 마음을 얻는 이야기다. 적적하던 할아버지는 외손자라며 다가온 엉뚱한 꼬마에게 정을 붙인다. 양로원의 다른 할아버지.할머니들에게 베라를 외손자로 소개하고, 공원 나들이도 함께 나간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세상을 떠난다. 허전해진 베라는 우페와 함께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참가한 후 연을 날리러 간다. 마침 바람이 불고, 연은 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것이다. 극적 반전이나 단숨에 읽히는 요란한 사건은 없지만 남남이던 할아버지와 꼬마의 잔잔한 사귐이 짧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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