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다고? … ‘어당팔’ 황우여 “두고 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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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황우여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의 별명은 ‘어당팔’이다. ‘어수룩하지만 당수(唐手)가 팔단’이라는 뜻으로, 4선 의원인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황 원내대표를 “무른 것 같은데 의외로 단단하고, 꺼벙한 것 같은데 실속도 잘 챙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혜훈 의원은 “조용하고 부드럽지만 한번 마음먹은 일은 집요하게 하는 분”이라고 평했다.

 당의 비주류였고 세(勢)도 없던 그는 6일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이명박계의 좌장인 이재오 특임장관이 지원한 안경률 의원을 꺾었다. 경선에서 안 의원을 지지했던 의원들 중엔 “황우여는 리더십이 없어서 안 된다”고 말하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의원들의 허를 찔렀다. 4·27 재·보선에서 당이 패하자 그는 신속하게 수도권 소장파, 친박근혜계와 접촉했다. 다른 한편으론 원내대표에 뜻을 둔 이주영 의원과 만나 “후보 단일화를 하자”고 했다. 황 원내대표는 ▶당이 철저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장파와 뜻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 ▶수도권 출신으로 원내대표 경선에 나올 수 있는 중진 의원은 이제 자기밖에 없다는 점 ▶친이·친박 대립 구도에서 중립을 지켜왔다는 점 등을 내세워 수도권 소장파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걸 무기로 경남에 지역구를 둔 이주영 의원을 자신의 러닝메이트(정책위의장 후보)로 뛰게 했다. 황우여-이주영 조는 1차 투표에서 1위를 한 데 이어, 결선투표에서 90표를 얻어 안경률-진영 조(64표)를 확실하게 제압했다.

 황 의원이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리하자 졸지에 ‘구주류’가 된 안상수 대표는 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같은 구주류인 정의화 의원을 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임명했다. 정 의원은 비대위를 인정받기 위해, 그리고 당 대표의 권한은 자신에게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절친한 친구 사이로 지냈던 황 원내대표를 만나자고 했다. 하지만 황 원내대표는 그의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만나면 그쪽 의도에 말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 황 원내대표는 “대표가 없을 경우 그 권한은 원내대표가 갖게 돼 있다. 당헌·당규를 보면 안다”는 논리로 중진의원들을 설득했다. 그의 주장은 먹혀들었다. 11일 열린 중진의원 회의는 그의 손을 들어줬다. 이날 열린 의원총회는 원내대표가 당 대표 권한대행을 하고, 비대위원장은 당의 실무 업무를 맡는 걸로 정리했다. 뜻을 관철하지 못했으나 신주류로부터 비대위원장 자격을 인정받은 정 의원은 “황 원내대표와는 서로 눈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정도로 친하지만, 그의 고집은 꽤 세다”고 말했다.

 황 원내대표는 2005년 국회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기 위해 애를 썼으나 황 원내대표는 “여당이 법을 개악하려 한다”며 여당 법안을 1년 이상 교육위에 상정해 주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은 결국 교육위를 건너뛰고 국회의장(김원기) 직권으로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날치기 처리를 했다. 그런 황 원내대표이기에 당에선 “마음먹은 걸 뚝심 있게 처리할 것이다. 구주류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을 것이다”는 등의 관측이 나오고 있다. 추가 감세 철회, 전·월세 급등 지역엔 전·월세 값 상한제 설정 등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대립되는 말을 하고 있는 그를 보며 청와대가 걱정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황 원내대표의 고집과 관련해선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소명의식이 강하다”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 그는 지역구인 인천시 연수구의 ‘연수중앙교회’ 장로로, 국회 조찬기도회 회장도 맡고 있다. 그는 ‘추진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엔 “두고 보시라. 이 말만 하겠다”고 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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