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 정책의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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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정부가 지난해 이후 동반성장을 부쩍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도급법 위반 혐의를 포착해 사건을 처리한 건수는 대폭 줄어들었다. 기업들이 하도급법을 갑자기 잘 지켰기 때문은 아니다. 공정위 공무원들이 동반성장을 위한 각종 제도를 만드는 데 집중하느라 일상적 사건을 처리할 손이 부족했던 탓이다. 일종의 ‘정책의 역설’이다.

 공정위가 최근 내놓은 2010년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하도급법 관련 사건 접수는 총 1268건이었다. 이는 2009년의 1900건에서 33%가 줄어든 것이다. 신고된 사건 수는 2009년 1011건에서 지난해 1044건으로 늘었다. 반면 공정위의 직권 조사 건수가 889건에서 224건으로 크게 줄어들면서 전체 접수 건수는 감소했다. 위법 행위에 대한 시정조치 건수도 절반 이상(54.6%) 줄었다. 하도급법 위반에 대해 공정위가 경고 이상의 조치를 한 사건은 2009년 1472건에서 지난해 669건으로 감소했다.

 공정위 김성하 기업협력국장은 “지난해 9월 이후 동반성장 대책 등 각종 제도 마련에 역량을 투입하느라 여력이 부족했고, 조사된 사건의 처리를 마무리하지 못해 올해로 이월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시정조치 건수가 감소한 것과 관련해선 “경미한 사건에 대해 경고 조치를 하던 것을 지난해부터는 계도하는 방향으로 돌렸다”면서 “행정력 낭비를 막고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동반성장 제도 마련에 초점을 맞춰 조직의 역량을 쏟는 행보는 지속되고 있다. 올 들어서는 동반성장위원회가 평가 대상 기업으로 선정한 대기업들에 동반성장협약 체결을 독려하는 데 앞장섰다. 공정위가 이들 기업의 협약 이행 실적 등을 평가해 점수화하면 동반성장위원회는 이를 중소기업이 느끼는 체감도 평가와 합산, 내년에 지수화해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에선 공정위의 ‘쏠림’에 따른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올 들어 물가 감시에 매달리면서 다른 업무는 상대적으로 등한시하고 있고, 담합사건 제재 등도 ‘서민 밀접 품목’에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위 관계자는 “ 서민 물가가 중시되는 상황이라 작더라도 체감도 높은 품목들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건국대 최정표 교수는 “공무원 조직은 위에서 중시하는 사안에 매몰되는 성향이 있다”며 “지나친 쏠림에 따른 부작용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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