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연구팀 ‘진화의 비밀’ 단서 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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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몸 길이보다 정자의 길이가 더 긴 동물이 있을까. 초파리 중 그런 종이 있다. 이 초파리는 몸 길이가 2㎜에 불과한데 정자의 길이는 30배인 6㎝에 가깝다. 정자의 꼬리가 길어서다.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노구치 립언(野口立彦) 박사팀은 정자의 꼬리가 길어지게 하거나 형태를 변하게 하는 데 미토콘드리아가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초파리의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고 최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영국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24일자에 실린다.

초파리의 정소에서 꺼낸 정자세포가 시험관에서 자라고 있는 모습. [일본 이화학연구소]

 초파리 암컷은 여러 수컷과 교미한다. 이 때문에 수컷 초파리의 정자들은 서로 먼저 수정하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 그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비결이 정자의 꼬리가 길거나 큰 데 있다. 힘이 강하고, 먼저 정자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자의 꼬리가 길어지거나 형태가 변하는 데 어떤 요인이 많이 작용하는지를 몰랐다. 초파리의 정자는 머리부분에서부터 꼬리 끝까지의 길이가 당초 정자 세포의 200배까지 늘어난다. 정자 세포의 처음 길이는 10㎛인데 2㎜까지 길어지는 것이다. 정자세포는 다른 세포에 비해 큰 미토콘드리아를 가지고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원형에서 점차 가늘고 길게 늘어나는 것이 이번 실험에서 관찰됐다. 즉, 정자가 늘어나는 데 미토콘드리아가 골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분자 수준에서 미토콘드리아의 어떤 유전자가 정자 꼬리가 자라는 데 관여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이는 종의 진화와 분화의 비밀을 밝히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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