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도 신군부가 접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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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MBC 정치 다큐드라마 '제 5공화국'이 화제와 논란에 휩싸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 미화 논란이 일고 있고, 실제 5공 주역들은 "사실을 왜곡한다"며 비판한다. 시청률은 상승세다. 첫 회 12.8%로 시작해 지난 8일에는 17.4%(AGB 닐슨미디어리서치)까지 올라갔다. 특히 40대 남성의 시청률은 전체 평균의 두 배에 육박한다.

◆ 예상 못한 '전두환 미화'논란=제작진은 5공 세력들에 대한 재판 자료 등을 기초로 대본을 만들었다. 따라서 5공 세력들이 '역사의 죄인'으로 그려질 거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장세동씨 등 12.12 사태 주역 17명이 MBC측에 공문을 보내 대본수정을 요구하고 법적 대응을 거론할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자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5공의 문을 연 전 전 대통령 미화 시비가 인 것이다. 현재 드라마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1만여 건의 의견 중 절반 이상이 그를 옹호한 의견이다. 그때가 경제적으로 살기 좋았다는 회고담부터 "권총 하나 차고 적진 한복판(육참총장실)에 들어간 건 살수대첩을 이끈 을지문덕 장군을 연상시킨다"는 칭송론까지 다양하다.

옹호론이 높아지는 만큼 최근엔 비판하는 목소리도 가열되기 시작했다. 부정부패.정경유착.지역감정 고착화 등의 병폐를 양산한 5공의 주역을 미화하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씨는 소련의 스탈린에 버금가는 세계적 독재자"라는 비난까지 보인다.

미화 논란을 부른 이유로는 탤런트 이덕화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가 우선 꼽힌다. MBC 내에선 "연기를 너무 잘 해 걱정"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탤런트 이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좋아하는 넥타이 디자인까지 연구했다고 한다. MBC 신호균 책임 PD는 "전혀 예상 못했던 반응"이라며 "5.18 유혈 진압 등이 부각되면 평가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 "제5공화국"이 재연한 12.12 상황. 당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연행해간 신군부를 진압하기 위해 탱크와 장갑차를 출동시켰다.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촬영한 이 장면은 15일 밤 방송된다.

◆ 5공 측 "만화 그리고 있다"=실제의 5공 주역들은 "드라마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12.12 당시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이었던 허화평씨는 "몇몇 연기자의 연기력 덕에 시청자들이 호감을 갖는 것일 뿐 5공 세력을 권력에 눈 먼 쿠데타 세력으로 규정한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전두환 소장이 이재전 중장을 보안사로 부르는 장면 등은 전 전 대통령을 안하무인식의 인물로 희화화하는 허구라고 주장했다.

이학봉 당시 보안사 수사과장도 "만화를 그리고 있는 것 같다"며 "합수부에서 차관회의를 했다는 것이나, 전 보안사령관에 대한 동해경비사령관 좌천설 때문에 12.12를 일으켰다는 설정은 거짓"이라고 말했다. 12.12는 좌천설이 나오기 전에 계획했다는 것. 또 "김재규는 고문하지 않았다"며 "당시 김재규가 심한 당뇨를 앓고 있는 데다 심장.간이 안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조사 과정에서 사고가 나면 어떻게 책임지려고 고문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노재현 전 국방장관도 "내가 비상계엄 상황에서 골프를 치는 것으로 묘사되는 등 인격에 손상을 주는 허구의 장면이 많다"고 말했다. 또 12.12 당시 총소리가 나자 자신이 가족만 데리고 도망치는 장면이 방영된 데 대해 "군의 총책임자로서 일단 몸을 피해야 군을 지휘할 것이 아니냐"며 "제작진이 나에게 당시 상황에 대해 전혀 물어보지 않고 흥미 위주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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