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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균형자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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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05년 5월 11일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주최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와 한국의 진로 모색'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신정현 경희대 교수가 발표한 '동북아 균형자론'의 전체 내용입니다.

  • 토론문 (김기정 연세대 정외과 교수)

    一. 문제제기
    1) 2005-03-08 : 공군사관학교 제53기 졸업 및 임관식
    “이제 우리군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자로서 이 지역의 평화를 굳건히 지켜낼 것입니다. 이를 위해 동북아시아의 안보협력구조를 만드는데 앞장서고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주변국들과 더욱 긴밀히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2) 2005-03-22 : 육군 3사 제40기 졸업 및 임관식
    “이제 우리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해나갈 것입니다. 따질 것은 따지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면서 주권국가로서의 당연한 권한과 책임을 다해나가고자 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동북아의 세력판도는 달라질 것입니다.”

    3) 요점
    ① 한국은 동북아시아의 전통적인 평화세력이다.
    ② 한국은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군사력을 갖고 있다.
    ③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④ 한미동맹의 토대는 굳건히 유지한다.

    그러나 동북아 균형자론은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이며 과연 현실세계에서 과연 타당성과 실현성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일련의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문제점들을 파악해보기 위해 우선 세력균형론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二. 세력균형론
    본래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이라는 용어는 상당히 애매한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예를 들면 언스트 하스(Ernst Haas)는 적어도 8가지의 상호배타적인 세력균형에 관한 정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개념의 핵심적인 사고는 두 가지 전제들에 기초하고 있다.
    ① 국제사회는 무정부상태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② 그러한 상태에서 국가의 안전과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국가의 힘(군사력)이 중요하다는 현실주의적 시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결국 국가의 대외적 안전과 세계평화는 상호경쟁하는 국가들간의 힘의 균형과정을 통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즉 군사력으로 추정되는 국가의 힘이 어떤 국가도 다른 국가를 효과적으로 위협하거나 침략하지 못할 수준으로 공평하게 배분되어 있을 때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 힘이 충분치 못해 위협을 당할 경우 국가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입각해서 서로 단결하여 균형을 회복하고 현상유지를 위해 방어동맹을 체결하기도 한다.

    세력균형의 기본적 전제조건들
    ① 즉각적으로 동맹을 형성하거나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수의 국가가 존재해야 한다.
    ② 세력균형체계는 일부지역에 국한된다.
    ③ 세력균형체계 내 국가의 정책결정자들은 행동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
    ④ 국가의 능력이 상호 비슷해야 한다.
    ⑤ 체계의 규칙이 인지되고 준수될 수 있도록 하는 공통적인 정치문화가 공유되어야 한다.
    ⑥ 전쟁을 위한 즉각적인 동원을 가능하게 하는 군사기술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⑦ 전쟁의 장기화와 파멸적인 무기를 개발하는 기술이 제한되어 있어야 한다.
    ⑧ 국가들의 정책을 결정하는 초국가적기구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세력균형체계의 유형
    ① 다각 세력균형체계
    이는 17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유럽의 전형적인 세력균형형태였다. 당시 유럽국제체계는 최소한 5개국 이상의 강대국들이 항상 존재했다. 이들 간의 견제와 균형이 유럽국제질서를 지배해 왔다.
    이런 시기는 “외교의 황금시대”(특히 1815년 비엔나 회의 이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를 실현했으며 전쟁은 상당히 제한되었다.

    ② 단순 세력균형체계
    1945년 이후 세계정치는 미국과 소련의 초강대국에 의한 양극체계를 형성했고, 구조나 본질이 다각세력균형에 비해 더욱 위험해 졌는지는 모르지만 단순해졌다.

    ③ 힘의 통합체계
    힘의 통합을 통한 균형과 안전은 국제연합에 의한 집단안보체제에 의해 대표되는 것이다. 그러나 집단안보나 권력 통합은 현대에 있어서는 극히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민족국가가 여전히 주권을 소유,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균형자(Balancer)
    ◎ 고전적인 유럽의 세력균형체계는 개별국가의 이익과 능력에 의거한 것이었다. “영원한 동맹은 없다. 단지 영원한 이익이 있을 뿐이다.”라는 동맹정치가 기반을 제공했다.

    ◎ 이런 동맹관계에 가입함으로서 자신의 힘을 극대화하려는 국가들은 타국가가 우월한 위치를 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 했다. 이런 맥락에서 균형자는 18, 19세기 동안 어느 편의 동맹세력도 상대방을 제압하는 힘을 가질 수 없도록 선별적으로 지지했던 영국에 의해 담당되었다.

    ◎ 국제정치를 현실주의적으로 규정하는 입장에서는 힘의 균형(현상)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불리한 입장에서의 힘의 균형을 수정하려는 세력 간의 힘의 평형을 위한 갈등이 계속되는 것으로 본다. 이 때 힘의 균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세력을 균형자라고 한다. 힘의 균형이나 평형은 주로 강대국 간의 힘의 제휴(power alignment)로 결정된다. 반면 약소국의 이해는 무시되거나 희생되기 쉽다.

    ◎ 영국의 처칠은 자국의 역할과 정책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지난 400년 동안 영국의 외교정책은 약한 국가의 편을 듦으로서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적이고 지배적인 국가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세력균형이론의 평가
    ① 국가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계속 국가들 간에 군비경쟁을 촉발시키고 국가의 대외적 안전환경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② 세계평화도 가져오지 못한다. 고전적인 유럽의 세력균형은 실제로 불안정한 것이었다. 1600년대 중엽부터 20세기 초기에 이르는 기간동안 유럽에서는(세력균형을 위한 본질적 조건이 충족되었지만) 전쟁이 규칙적으로 발생했다. 결국 제력균형의 매카니즘은 평화를 지속시키는데 실패했다.
    세력균형을 부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이는 세력균형의 매카니즘이 평화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전쟁의 <원인>이었다는 주장을 가능케 한다.

    ※ 집단안전보장의 개념 : 우드로 윌슨 대통령에 의해 제창되었다. 불행하게도 집단안보의 매카니즘 또한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1931년이 일본의 만주침략, 1937년 중국에 대한 침략공격, 그리고 1935년의 이탈리아의 이디오피아 침략 등이 일어났다. 그리고 1938년 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침략이 있었다.

    ※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세력균형론은 일부 학자들과 정책결정자들에 의해 다시 등장했다.

    헨리 키신저 : 현대세계에서 유일하게 현실적인 국가안보에의 접근방법으로 세력균형개념의 재정비를 추구했다. 이런 노력은 국가의 자족은 안보를 위한 유일한 방편이며 평화는 힘을 통해 오는 것이며 잠재적인 침략국이 억지되기 위해서는 훨씬 강력한 힘에 의해 대처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반영한 것이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연설 : “우리는 세계의 평화가 오래 지속된 유일한 기간은 국가간의 힘이 균형이 유지되었던 시기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특히 강력한 국가들, 미국, 유럽, 소련, 중국, 일본 간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주장)

    三. 현대 국제체계의 변화
    ① 핵무기의 등장
    - 동서간의 평화공존을 이끌어 냈다.
    - 대량적인 파괴력으로 국가들간의 힘의 균형 개념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② 공존, 협력 시대
    - 무정부상태가 아니라 일정한 국제적 레짐이 작용하는 국제체계 형성.
    - 힘(군사력)의 균형 개념을 고전적인 국제체계로 제한시킴.
    - 국가들간의 상호 의존성 심화.

    ③ 단극, 다극체계 형성
    -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지위와 역할, 능력을 유지.
    - 나머지 강대국들간의 경쟁체계 유도.

    ④ 다자외교 시대 출현
    - 힘의 균형에 의한 국가 안보나 세계 평화의 모색이 아니라 다자간의 협의를 통한 예방외교 및 공동안보를 추구.

    ⑤ 고위정치(High Politics)에서 하위정치(Low Politics)로 국가이익이 변함: 경제적, 사회문화적 교류 및 확대

    四. 동북아 지역체계 : 갈등과 협력의 양면성을 표출
    ① 민족주의적 갈등: 중․일 갈등, 한․일 갈등
    중일갈등: 역사문제: 일본역사 교과서 왜곡문제
    패권적 갈등: 중일간의 경제, 외교, 군사적 미래에 대한 패권 쟁취를 위한 싸움
    중국: 중화이념에 바탕을 둔 강대국의 지위, 역할 추구
    일본: 우경화와 군사대국화를 추구
    대만문제: 중일간의 입장차이 현격함. 중국은 반국 가통일법을 제정. 대만독립을 반대, 그러 나 일본은 대만이 공격받을 경우 대만의 방어를 도울 가능성이 높다
    한일갈등: 독도 영유권 문제, 역사교과서 왜곡
    한국: 민족적 정체성의 강화
    일본: 우경화와 군사대국화 지향

    동북아지역에서 일어나는 민족주의적 갈등은 위험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위험은 동북아에서 잠재적 폭발성을 내포하고 있다. 더욱이 이 지역에는 유럽에서의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나 나토(NATO)처럼 역내 국가들을 포괄하는 국가간 메카니즘이 부재하다. 다시 말해, 국가간 긴장을 줄여주거나 상호협력을 위한 틀을 제공할 다자적 구조가 존재하지 않고 있다.

    ② 군비경쟁: 국방비 지출
    미국: 3296억 달러
    일본: 371억 달러
    중국: 484억 달러
    한국: 131억 달러

    중요한 문제는 주요 국가들의 국방비 지출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2007년에는 4510억 달러로 늘어날 것이다. 중국의 국방비는 매년 9.6% 증가, 일본은 GNP대비 1%미만을 방위비로 지출하고 있으나 절대액수는 연평균 약 6%정도 증가.

    ③ 경제적 교류와 협력증대
    쌍무적 무역교류와 자본투자 등은 계속 증대되고 있음.
    APEC, ASEAN 확대회의 등이 개최되고 있음.

    五. 한국의 국력평가
    균형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한국 - 세계 10대 경제대국
    - 100년전 구한말과는 크게 다르다
    - 소프트 파워(외교력, 국제적 발언권)면에서 한국은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 그러나, 국력의 주요요소인 인구, 국토면적, 국내총생산, 교역규모, 국방비 등에서 한국은 동북아 강대국들에 비해 여전히 미약한 실정이다.
    - 한국의 GDP: 일본 GDP의 7분의 1
    - 한국의 인구: 중국 인구의 27분의 1

    六 . 결어
    동북아 균형자론이 참여정부 들어서 제시된 “평화와 번영을 위한 동북아 중심국가, 협력적 자주국방” 등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동북아지역에서 한국정부가 외교, 안보 정책을 수행해 나가는데 있어 자주적 입지를 확대해 나가려는 의도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국제 체계와 동북아 지역체계의 변화추세 및 구조적 특성들을 고려해 볼 때, 동북아 균형자론은 적절한 국가 외교․안보 정책의 기본방향이 될 수 없다. 또한 한국의 국력수준도 균형자의 지위와 역할을 수행하기에 미흡한 실정이다. 즉, 현실국제 사회에서 실현성이 결여된 것으로 평가된다. 오히려 균형자론은 한국 외교의 입지를 왜소하게 만들거나 축소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대신 장래 한국의 외교․안보정책 기조로서 “전방위 우호협력”이 바람직하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긴밀히 유지하면서, 중국, 일본, 러시아와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 한국의 국가안전 등 국가이익에 기여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신정현(경희대 교수)

  • 토론문 (김기정 연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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