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65세 김씨, 벌이 한 푼 없는데 월 17만원 ‘건보 폭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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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건강보험과 지역건강보험료 형평성 논란은 10년 이상 계속돼 왔다. 발단은 2000년 건강보험 통합이다. 보험료를 매기는 기준이 다른데 어떻게 돈주머니를 같이 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9차례나 전문가들이 달라붙었지만 통합 방안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직장은 근로소득, 지역가입자는 종합소득·재산·자동차에 보험료를 매기는 ‘따로따로 체계’를 유지해 왔다. 월급쟁이의 근로소득은 투명하게 드러나지만 의사·약사·변호사·회계사·변리사, 대형음식점 대표 등의 자영업자(지역건보)들이 소득을 축소 신고한다는 이유에서다. 소득의 보완장치로 재산·자동차에 건보료를 매겼다.

 ‘따로따로 체계’에 대한 비판은 최근 1~2년 사이에 강해졌다. 금융위기로 인한 실직자나 퇴직한 베이비부머(1955~63년 출생자)들이 직격탄을 맞으면서다. 서울의 102㎡(31평형) 아파트(지방세 과세표준액 4억1000만원)에 거주하는 이모(45)씨의 예. 이씨는 2009년 중순 벤처기업을 다니다 실직했다. 월급 500만원을 받으면서 14만1000원(본인부담 기준)의 보험료를 내다 지역건보료가 21만2370원으로 올랐다.


 은퇴한 사람에게는 더 가혹하다. 경기도 안양에 사는 김모(65)씨는 2009년 말 공장 일을 그만뒀다. 공업사에 다닐 때는 월 390만원을 벌었지만 지금은 소득은 없다. 그런데 월 17만원의 건보료를 낸다. 아파트(2억4000만원), 2년 지난 중형승용차 때문이다.

 실직자와 은퇴자의 건보료 부담의 근원은 재산이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서울 마포에 66~99㎡ 아파트(1억5000만원, 지방세 과표기준) 한 채와 7년 지난 준준형 승용차가 한 대 있으면 13만원(재산 건보료는 9만원) 정도 낸다. 이들은 “고가가 아닌, 거주용 아파트 한 채에 너무 많은 보험료를 물린다”고 항변한다. 재산 건보료는 98년 지역건보료의 27%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39.5%까지 커졌다. 2005~2009년 정부의 재산세 과표 현실화 조치가 부담을 높였다.

 직장가입자의 형태나 소득원이 다양해지면서 ‘따로따로 체계’의 모순이 확연해진다. 대표적인 문제가 고소득 전문직 사업장 대표자다. 현재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들은 거의 모두 직장가입자로 돼 있다. 이들은 사업자등록을 한 사람은 사업소득(임대소득 포함)에, 법인의 대표자나 직원은 근로소득에만 보험료를 문다. 경기도 모 의료법인 대표 한모(57)씨는 후자의 경우다. 올 1월 의원에서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건보료가 177만6060원(지역가입자)에서 31만8660원(직장인)으로 줄었다. 그 전에는 빌라·아파트·토지 등 30억원이 넘는 부동산과 승용차 2대, 사업소득(7억5100만원)에 각각 건보료를 물었지만 올해는 월급 1130만원에만 보험료를 낸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건보공단에 매달 20만~30만 건의 항의 전화가 빗발친다.

 근로소득 외 종합소득을 신고하는 직장인도 매년 늘어 2009년 147만 명이 됐다. 정부는 직장인들의 임대·배당·이자 등의 다른 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조심스레 만지작거리고 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지역가입자들의 소득파악률이 44%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소득 축소 신고의 주범인 고소득 전문직이 직장가입자로 전환했기 때문에 지금의 지역가입자는 일용직근로자, 실직자, 은퇴자, 농어민, 1인사업자 등 사회적 약자가 대부분”이라며 “과거 소득파악률 잣대도 이젠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박유미 기자

◆재산 건보료=주택·건물·토지·전세료 등 부동산에 매기는 건보료를 말한다. 과표는 지방세 과세표준액이 기준이다. 주택은 공시가격의 60%, 건물과 토지는 70%다. 1등급(3600원, 과표 101만~450만원)에서 50등급(24만4000원, 과표 30억원 초과)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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