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 급락에도 떨어지는 주가,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2면

“대단한 한 주였다. 지난주 원자재의 급격한 조정 이후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어찌하여 원자재 가격의 하락은 주식 약세와 동반되는가’. 2009년 이후 있었던 주식시장 랠리를 다시 시현하려면 원자재가 아닌 그 무언가가 랠리를 주도해야 할 것이다.”

 짐 오닐(Jim O’Neill·사진) 골드먼삭스자산운용 회장은 7일 고객에게 ‘원자재 없이 주식만의 랠리가 가능한가’라는 제목의 글을 보냈다. 이 글 첫머리에 그는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는데 주가는 왜 떨어지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 인플레이션 압력 둔화로 이어지며 증시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최근 시장은 반대로 움직였다.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자 상승세이던 세계 주식시장도 덩달아 출렁거렸다.

 지난 일주일 동안 국제 은 가격은 27% 폭락했다. 국제 유가도 10% 뚝 떨어졌다. 코스피는 지난달 29일 2192.36에서 6일엔 2147.45로 2%가량 하락했다. 같은 기간 다우존스 산업지수도 1.3% 하락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 의견은 갈린다. 원자재 가격 급락은 수요 위축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과 투기세력이 이탈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맞서고 있다. 하지만 원자재 값 하락이 주식시장 약세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는 의견이 모아진다.

 오닐 회장은 “최근 몇 년 새 시장은 원자재 가격 상승을 세계 경제 성장의 상징으로, 원자재 가격 하락은 경제 하락의 상징으로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고 진단했다. 상당수 투자자는 원자재 값이 하락한 이유가 원자재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며 이는 경기 둔화를 의미한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그러나 “시장 참가자가 1980~90년대 원자재 가격이 하락했음에도 세계 경제는 확장됐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음의 이유를 들어 “원자재가 추가 약세를 보이더라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우선 물가가 크게 오르면 금융 부문 긴축→성장 둔화→원자재 수요 감소 등을 거치게 된다고 소개했다. 그는 “최근 갑작스레 많은 국가의 경제지표가 실망스럽게 나왔다”며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 상승이 그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중국 경제는 최근 몇 개월 사이 크게 둔화됐으나 원자재 가격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별다른 징조를 보이지 않았다”며 “앞으로도 원자재 가격 하락이 지속될 수 있으리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다른 시장과도 연관돼 있기 때문에 원자재의 추가 하락이 주식시장의 약세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재만 동양증권 연구원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세계 투자자가 원자재 가격 하락을 유동성 위축과 경기 둔화로 해석했다”며 “하지만 지난 주말 발표된 4월 비농업 부문과 민간 부문 고용자 수는 각각 24만4000명(예상치 18만5000명)과 26만8000명(예상치 20만 명) 증가하며 미국 고용시장이 지속적으로 회복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증시는 가격 조정 국면을 탈피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이승우 대우증권 연구원은 원자재 값 하락을 그동안 이상 급등을 주도했던 투기세력의 이탈로 본다. 그는 “4월 말 현재 세계 원유 선물의 투기적 순매수는 25만 계약”이라며 “2007년부터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전까지 월평균 투기적 순매수가 4만 계약인 것을 고려하면 원유시장에 얼마나 많은 투기자금이 들어와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유 소비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중동의 민주화 운동으로 원유시장이 일방적으로 약세로 흐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며 “일부 투기 자금의 이탈을 시장 전체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오승훈 대신증권 연구원은 “시카고상업거래소(CME)가 지난달 22일부터 은 선물거래에 대해 5차례 증거금 인상을 단행한 데다 지난달 미국 정부가 특별조사팀을 구성해 유가와 관련된 투기세력을 조사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원자재 가격 하락은 수요 위축보다는 규제의 영향을 더 받았다”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