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아내 대신 새 여자 맞는 北 남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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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남편과 자녀를 남겨두고 탈북하는 여성이 늘고 남겨진 남편은 새로운 여자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면서 최근 북한에선 가족 해체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만한 점은 남편들이 새로운 아내를 찾아나서는 이유가 자녀의 양육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생계를 책임져 돈을 벌어올 여자가 필요해서라는 게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6일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에 따르면 함경북도 등 북한 지역 소식통들은 "아내가 행방불명(탈북)되면 남편들 십중팔구는 가정을 새로 꾸린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경제난이 심각해지면서 북한에선 대부분의 기업과 공장들이 문을 닫은 상황이다. 공장이 가동된다 해도 남자들이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5000원 안팎이어서 여성들이 장사 등을 통해 가족의 생계를 같이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가 탈북하면 남편들이 돈을 벌어줄 새로운 아내를 찾아 나선다는 것이다.

새 가정을 꾸리려면 결혼등록을 해야 한다. 때문에 자연스레 이혼 신청도 늘고 있다. 북한에서도 이혼은 썩 명예로운 일이 아니다. 당국은 재판에 의해서만 이혼을 허용하도록 가족법 제 20조 제 2항에 명시하고 있다. 이혼신청서의 수입인지를 고가로 책정하는 등 규제도 하고 있지만 탈북 가정의 이혼을 막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한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시기를 이용하거나 간부들에게 뇌물 등을 주면 이혼을 쉽게 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지난해 한국에 온 탈북자 김모(40)씨는 "남편이 새로운 여자와 2년 정도 살다가 2008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때 안전부에 가서 결혼등록을 했다"며 "선거하는 시기에 등록하면 불필요한 절차 없이 이혼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탈북자 이모(43) 씨는 "선거 시기가 아니라면 담배나 술 등을 뇌물로 주고 안전부 주민등록과에 가서 '본처가 행방불명'이라고 하면, 전 아내를 바로 삭제하고 새 여자를 등록해 준다"고 전했다.

예전만 해도 북한에선 행방불명자로 신고하겠다고 하면 안전원들이 '언제, 어떻게, 왜?'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러나 요즘은 탈북자들이 하도 많아 일일이 물어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당국이 ‘이혼은 혁명의 원수이고 자식들의 미래를 좀먹는 개인이기주의’라고 비난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젠 옛날 이야기가 됐다.

새 가정을 꾸린 뒤 자녀들은 새 엄마의 눈치를 보고 살기 때문에 남편들은 대부분 전처 가족들에게 아이들을 맡긴다. 그러나 경제 사정이 워낙 안 좋아 아이들은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한다.

남편들은 남겨진 자식을 구실로 탈북 여성들에게 생계자금을 보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최근 북한인권정보센터 조사 결과에 의하면 국내 탈북자의 절반 정도가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낸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자 김순희(34)씨는 “북한에 있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서 7살 난 딸애를 친정 엄마에게 보냈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딸을 데려다가 나와 전화통화를 하게 한다”며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것이 돈 때문에 왔다 갔다 하며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 북한에 다시 넘어가 납치해서라도 딸을 데려오고 싶은 심정”이라고 괴로워했다.
2009년 탈북한 최모(39)씨도 “북한에 11살 딸이 있다. 여기서 번 돈은 북한에 모두 보낸다. 두고 온 자식들 앞에 죄스러워 보내는 돈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최씨의 남편은 북한에서 다른 여성과 가정을 꾸렸다. 그가 보낸 돈이 딸을 위해 쓰이고 있는 것을 확신할 순 없다. 그러나 이마저도 보내지 않을 경우 딸이 처할 경제적 궁핍에 최씨는 어쩔 수 없이 돈을 보내고 있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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